성(性)이라는 주제는 까다롭다. 주제 그 자체가 까다롭다기보다는 토론의 장으로 끄집어내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까다롭다. 어찌보면 까다롭다는 표현에 어폐가 있을런지도 모른다.
오히려 조심스럽다는 말이 어울릴 성 싶고, 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다소 터무니없이 들릴 수 있겠지만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 만큼 이중적이고 양면성을 띤 이야기거리도 찾기 힘들다.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드러내놓고 알려고 하지 않고, 알고 있다고 쳐도 그릇된 지식을 지닌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부부 사이조차 드러내놓고 성에 대해 솔직해지기를 두려워한다. 우리 사회는 성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 하다. 성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동시에 '강한 남성'에 대한 동경과 자부심이 공존한다. 비뇨기과 전문의 4명을 만나 성에 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었다. 참석한 이들은 전성호, 박남일, 배억수, 변창렬 원장. 대구지역에서 비뇨기과 전문의원을 시작한 지 10년 안팎의 의사들이다. 장소는 주제에 맞춰(?) 시내 중심가의 한 맥주집으로 정했다. 생맥주 한 잔을 곁들인 남성들만의 '섹스 토크'는 오후 7시30분부터 시작됐다.
◇ 솔직해지자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자리도 아니고, 게다가 적절한 수위 조절이 필요한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첫 질문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비뇨기과를 찾는 남성들의 입장에서 먼저 운을 땠다. "거리에 나붙은 현수막과 각종 광고를 보면 '강한 남성'을 만들어준다는 문구가 쉽게 눈에 띈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남성들에게 비뇨기과의 문턱은 높게만 느껴진다. 특히 배뇨와 관련된 질병이 아닌 성과 관련된 방문일 경우 더욱 그렇다. 왜 그런가?" 참석자 중 가장 고참격인 전 원장이 먼저 답을 했다.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이 아프면 안과를 가고, 골절상을 입으면 정형외과에 간다. 성적인 문제가 있다면 비뇨기과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
"비뇨기과 원장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 전립선염, 배뇨장애, 요로결석 등을 전문으로 다루는 의원은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환자가 많고, 음경확대나 조루 등을 전문으로 하는 의원은 오히려 반대라는 것이다. 실제로 내 병원에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오지 않는다. 동창회에 나가서 명함을 그렇게 돌렸는데도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배억수 원장의 말이다.
박남일 원장은 남성만 솔직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40대 남성 환자가 조형물을 삽입하는 음경확대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며칠 뒤 환자가 찾아와서는 "아내가 당신 미쳤다며 펄쩍 뛰더라."고 난감해 했다는 것. 석달 쯤 뒤에 다시 찾아온 환자 왈, "그렇게 싫으면 다시 재수술할까?"라고 물었는데 아내가 눈을 흘기며 "이미 수술한 걸 왜 굳이 빼느냐"며 핀잔을 주더란다. 여기에 배 원장이 한 마디 덧붙였다. "학력이 높을수록 사무직에 종사할수록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오히려 학력도 낮고 블루칼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솔직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야기하죠. 하지만 고학력 사무직들은 병원에 와서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작 한참 상담을 하고 치료가 진행되면 그제서야 원만하지 못한 부부관계에 대해 털어놓습니다."
◇ 과시욕이 문제
그렇다면 왜 이렇게 성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것일까? 실제 비뇨기과 학회에 참석한 한 의사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단다. "남자들끼리, 게다가 알만한 사람들이니까 솔직히 말해봅시다. 수술을 받은 사람, 없습니까?" 예상대로 단 한 명도 손을 들지 않았다. 실제 수술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했지만 밝히기를 꺼릴 수도 있다. 의사들끼리도 쉬쉬하는 이 문제, 이유는 도대체 뭘까?
변창렬 원장은 지나친 과시욕을 지적했다. "재산 20억 원이 있는 사람은 100억 원짜리 재산가를 부러워합니다. 그만큼 돈을 모으려고 악착같이 애를 쓰죠. 우리가 보기에는 20억 원이면 충분한데도 말입니다. '남성' 역시 마찬가집니다. 전문의들이 보기에 나무랄데 없는데도 본인은 수술을 원합니다. 정작 수술이 필요하다싶은 환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는 자기만족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남성의 크기는 원만한 성관계서 별다른 문제가 안된다. 큰 것이 좋다는 남성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목욕탕에서 종종 마주치는 상대적으로 큰 남성이 부러워서 수술을 원한다는 것. 배 원장은 의견을 조금 달리했다. "확대 수술을 불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다. 만약 작은 남성 때문에 성관계시 위축된다면 수술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수술을 받은 환자 중 70~80%가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성의 크기가 핵심은 아니지만 본인 또는 파트너에게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 강한 남성의 의미
도대체 '강한 남성'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배 원장은 "크게 4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성적 능력, 즉 얼마나 자주 성관계를 갖고 싶어하는지의 차이다. 매일 못하면 잠을 못이룰만큼 집착하는 사람이 있고, 한 차례 관계 이후에 며칠씩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다. 둘째와 셋째는 남성의 강직도와 크기를 들 수 있다. 물론 크다고 해서 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지속시간을 들 수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은 논란이 많다." 지속시간은 남성들이 성관계시 가장 고민하는 문제인 '조루'와 직결돼 있다.
박 원장은 외국에는 조루라는 개념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 학계에서 삽입 후 5분 이내 또는 50회 이하 반복운동시 사정을 할 경우 조루라고 규정했지만 요즘은 그런 개념이 없다. 파트너가 오르가즘에 오르기 전에 끝나면 그것을 조루라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진다. 서양의 경우 섹스시간을 물어보면 대개 1~2시간이라고 답한다.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는 5~10분이라고 한다. 그만큼 서양 남성들이 강하다는 뜻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섹스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우리는 섹스는 남성과 여성의 실제 삽입으로 보는데 반해 서양은 가벼운 볼 터치나 키스 등 전희를 모두 섹스로 규정한다."
변 원장은 바꿔 말하면 여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일방적인 성관계만을 중시하다 보니 지나치게 '강한 남성'에 집착하는 경향이 크다고 했다. "정작 여성들은 전희를 통해서도 충분한 쾌감을 얻을 수 있고, 오히려 지나친 피스톤 운동에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심인성 발기부전, 즉 마음의 문이 닫히는 바람에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도 이런 문제에서 비롯한다. 파트너를 만족시켜야겠다는 강박관념, 그런 강박증을 해소하는 잘못된 방식, 만족하지 못한 파트너의 비난 등이 고개숙인 남성을 만느는 셈이다."
◇ 은밀하지 못한 공간도 문제
한국사람만큼 음경확대나 조루증 치료를 많이 받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특히 음경확대는 자기만족의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파트너가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감을 얻기 위해 수술을 받는다는 것. 하지만 조루는 실제 남성들 상당수가 고민을 하고, 또 수술, 약물 등의 치료를 통해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 남성들이 조루로 고민하는 것일까?
배 원장은 은밀하지 못한 공간의 문제를 지적했다. "서양사람들의 주거문화를 보면 이해가 간다. 그네들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따로 방에서 생활하도록 하고, 부부와 자녀의 공간이 엄격히 구분돼 있다. 쉽게 말해 부부만의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요즘 들어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같은 방을 쓰는 경우가 많고, 다른 방을 쓰더라도 언제 아이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올 지 모르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결국 이불을 뒤집어 쓰고,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일을 끝내야 한다. 그러다보니 전희고 뭐고 없다. 결국 삽입에만 의존해 여성을 만족시켜야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전 원장은 "성 문제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집착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남성의 크기나 지속시간에 의존하는 부부관계는 어느 순간이 되면 다시 시들해진다는 것.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일탈은 꿈꾸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색다른 유혹에 끌리게 된다. 실제 모 병원에서는 한 여성이 시간 차이를 두고 두 명의 남성과 함께 온 일이 있었단다. 첫번째 남성 환자는 남편이었고, 두번째는 애인이었다고. 변 원장은 "성이 부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즐거운 행위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특히 남성의 경우, 상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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