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여행] 여름

여름철은 천둥벌거숭이들의 천국이다. 하루 종일 개울가에서 발가벗고 놀거나 매미 잡고 메뚜기 잡으러 왼 종일 야산을 뒤지고 다녀도 좋았다. 사카린 넣은 감자 서너알씩 삶아 먹으며 즐거움에 만족하던 그 때가 더 행복한지도 몰랐다. 행복은 만족에서 오는 것이니까. 여름철 스릴있고 신났던 물총놀이에 대한 추억을 쏘아보자.

"영훈아, 엎드려, 엎드려"

덩치가 개중 큰 영훈이가 순진하게 등을 구부리며 엎드렸다. 아버지는 우리가 고생스럽도록 뒷간 선반 꼭대기에다 벼린 낫을 얹어 놓았다. 영훈이 등에 발을 디디며 올라서자 미끄덩거리며 넘어졌다. 땀이 채여 등에 올라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 그것도 못 올라가나"

옆에서 구경하던 정태가 꼬라지를 부리며 지가 대신 영훈이 등에 올라섰다. 양발을 쫙 벌려 제법 꾀를 내서 선반 위의 시퍼런 낫을 손에 들었다.

우린 정태집 뒤뜰에 울창하게 뻗은 대나무 숲으로 갔다. 대나무 숲 사이로 파란 찬바람이 불었다. 낫으로 우리 팔뚝보다 더 굵은 대나무 밑 둥을 찍기 시작했다.

한참을 찍었을까, 대나무가 비스듬하더니 쓰러지기 시작했다.

"어, 어 영훈아 비켜! 비켜!"

영훈이는 얼떨결에 대나무를 피하려다 고무신에 미끌려 넘어졌다. 영훈이의 머리통이 과녁이 되어 쓰러지다가 다행히 이웃 대나무 어깨에 걸려 멈춰 섰다. 영훈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도 잠시, 금세 생글거리며 웃는 표정이 되었다.

정태집 툇마루에서 본격적인 대나무 물총 만들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대나무의 한쪽 끝에 마디를 남겨 두고 톱으로 팔뚝 길이만큼 대나무를 자른 다음, 마디 끝에다 못으로 구멍을 뜷었다. 영훈이와 나는 굵은 못으로 뚫었는데 반해 정태는 가는 못으로 구멍을 뚫는 게 아닌가.

"야, 일마야 굵은 못으로 뚤버야 물이 마이 나가지"

"너거들은 굵은 거로 뚤버라, 나는 가는 기 더 좋다"

줏대 없는 영훈이가 가는 못을 집어 들자, 내가 한마디 쏘아 붙였다.

"덩치에 맞게 놀아라 일마야" 영훈이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영훈이는 슬그머니 가는 못을 내려놓고 굵은 못을 쥐어 들었다. 자연스럽게 편이 갈리는 순간이었다.

물총의 몸통 크기보다 조금 더 길게 가는 대나무 줄기를 잘랐다. 피스톤 역할을 하는 수놈대나무 끝에다 걸레를 실로 감싸고 싸리나무 줄기를 가로질러 손잡이를 만들었다.

대나무 물총을 만드느라 한 시간 남짓 소비했지만, 이제 신나는 물총놀이는 하루 종일이 될 건지 방학 내내 할 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대나무 물총을 담그고 손잡이를 당기자 물이 쭈욱 빨려들어왔다. 굵은 못으로 뚫은 우리 물총이 더 빨리 채워져 보란 듯이 정태에다 '찌익' 물 한 방을 날렸다. 정태는 물을 채우면서 묵묵하게 물세례를 받았다. 곧 물이 다 채워졌는지 서부의 건 맨처럼 대나무 물총을 양손으로 쥐고 물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근데 정태의 물총에서 나오는 물줄기는 멀리까지 나갔다. 그에 반해 우린 반절도 나가지 않았다. 유효 사거리가 다른 셈이었다. 그 이후 물총싸움은 정태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유효사거리가 긴 정태가 우물가를 점령하고 물을 넣으러 다가오는 우리에게 보기 좋게 물세례를 퍼부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도회지 문방구에서 사온 고무물총을 만나고부터는 굳이 대나무 물총을 만들며 놀지 않았다. 하지만 요새 새롭게 대나무 물총에 대한 추억이 새롭다. 체험학습으로 대나무물총 만들기를 많이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찔하게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싶으면 함양 물레방아 떡마을이 이색적이다. 한여름 밤의 솔밭공포영화체험이 흥미롭다. 대나무로 만든 물총을 쏘고, 다슬기와 송사리를 잡다 보면 어느 새 더위는 옛날로 되돌아가게 된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모습만 봐도 시원할 것 같다. 함양 물레방아 떡마을에서 함께하면 좋을 것 같다. www.ansim.go2vil.org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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