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짝퉁 공화국

'짝퉁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다. '신정아'의 여진이 남은 상태에서 하나도 해결된 것은 없다. 대학 진상위는 '속은 것은 사실이지만 별 문제는 없다.'는 식으로 종료했다. 예일대에 확인조차 하지 않고 가짜박사를 보란 듯이 채용했는데 정작 책임질 사람은 없단다. 미국으로 줄행랑치면서 '잠시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고 잠행에 나선 것도 이 같은 한국적 '용두사미'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리라.

애당초 빗나가버린 그녀만이 문제일까. 가짜 외국박사가 난무한다지만 따지고 보면 그네들은 그래도 순진한 편. 언젠가 탄로날 수도 있는 명백한 가짜이기 때문이다. 교묘한 '짝퉁박사'가 오히려 더 문제일 수도 있다. 순진하거나 노골적인 가짜만큼이나 위험한 짝퉁들이 풍미하고 있다.

한마디로 '논문 같지 않은 학위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이들이 도처에 즐비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문화계 기관장은 자신의 아랫사람인 박사급 직원들에게 대리집필을 시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것을 근거로 한층 높은 자리로 영전해 아직도 현직에 있다.

'공모'하여 순종적으로 글을 써주는 대가로 살아가는 박사들의 잘못도 크다. 황우석의 가짜 실험실 파동은 일개인을 뛰어넘는 '황우석 집단'의 집단적 맹신도 요인 중의 하나였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스타반열에 오른 한젬마의 대리집필 파동, 정지영의 '마시멜로' 대리집필 파동, 그리고 웬만한 유명인사의 자서전과 정치인의 회고록 등등 대리집필이 만연하고 있다. 이 또한 구술이나 자료제공에 기초해 전문작가가 저술했음을 공지하는 외국의 경우와는 너무도 판이하다.

정부에서 발주하는 다양한 연구용역의 책임연구원 밑에 적시된 수많은 고급인력들은 최소한의 비용만 지불받고 실제의 연구용역을 수행한다. 공동연구라는 미명 아래 좌장에 의한 무한대 연구도용과 인력착취가 벌어지고 있다. 학생은 자신의 출세와 안정적 미래를 위해 기꺼이 협조하고 지식을 상납한다.

대학원 수업시간에 제출한 리포트가 교수의 저서에 버젓이 끼어든다. 학생의 리포트를 토씨 한자 고치지 않고 무단 도용한다. 이러한 학문풍토에서 자란 대학원생도 남의 논문을 도용해 등재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저서에 수록하기도 한다. 무감각일까, 아니면 '짝퉁공화국' 한국사회에서는 당당해도 된다는 자신감의 발로일까.

문화콘텐츠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정부의 지원이 집중되자 일부 인문학자들은 남의 콘텐츠를 가져다가 연구사업비를 타낸다. 남의 연구성과를 거의 그대로 가져다가 '문화콘텐츠화'란 허명으로 도배하고 연구성과를 '도적질'한다. 문제는 자신이 '도적질'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자신의 가짜행위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실로 착각하는 리플리효과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남의 논문을 슬쩍 표절하고 난 다음에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그 연구의 최초 저작자란 착각에 빠지고 만다. 우리 주위의 너무도 많은 리플리들이 오늘도 연구 자체보다는 표절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통제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자정력은 있는가. 도덕적·윤리적 진정성은 뒤로 밀리고 그저 이기면 된다는 1등 제일주의 신화가 만연되어 있다. 대통령 후보들조차 자신들의 과오나 부정 등에 대하여 반성하기는커녕 '국민적 합의 또는 여망'을 빌미로 묻어둔다. 대권후보들이 이러하니 국민 모두가 부도덕적 자신감에 빠져들까 걱정이다.

'가짜박사' 신정아의 일련의 행각들은 필경 영화감이다. 캔자스대학과 예일대학으로부터 동국대학, 광주비엔날레, 그리고 국내 유수의 화랑 등, 신문기자와 재계 유력자, 교수와 학생, 유명 화가들과 평론가 등 배경인물과 무대가 화려하다.

마광수 교수가 시집을 펴내면서 무단도용으로 파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남의 작품이지만 어느결에 자신의 작품인양 착각에 접어든 것이다. 도둑이 훔쳐온 장물들을 쌓아놓고 재산이 늘어났음에 스스로 놀라는 이치와 같다. 도둑은 사업가로 변신할 것이고, 수완에 따라서는 정치인도 될 수 있을 것이며, 약간의 기부행위로 양심 기업인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제2,제3, 아니 제20,제30의 신정아들이 포진하고 있다. 교수나 광주비엔날레 진출만 없었던들, 신정아는 10년은 더 버텼을지도 모른다. 언론도 그녀를 한국 최고로 밀어붙였을 뿐 비판과 검증은 애시당초 작동하지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신정아는 너무도 훌륭했다. 더욱 기가 찬 일은, 파렴치한 그녀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과연 우리 사회에 있을까 하는 것이다.

주강현 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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