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다섯 가지의 '끈'

로마 교황청의 제임스 프랜시스 스테포드 추기경이 '세상 안에서의 노인의 존엄과 사명'을 선언한 지도 10년이 돼간다. 젊은 세대에게는 어르신 세대에 대한 봉사와 省察(성찰)의 기회를 주고 어르신 세대에게는 자신의 남은 삶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자는 신앙적 캠페인이다. 이 선언적 캠페인은 '젊은 세대가 노인들과 함께하고 어른들에게 감사할 때만이 하느님께서 영원히 찬미받으신다'는 경로정신의 신앙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평균 연령이 38.4세 안팎으로 늘어난 우리사회도 점차 고령화 사회가 돼가면서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와의 共存(공존)과 유대가 더욱 긴밀히 요구되고 있다. 노년의 존엄과 어르신 세대의 사명이 단순히 나이 대접이나 사회보장적 보호 장치 속에서 저절로 받들어지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노년 세대 스스로 능동적으로 창조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노년 세대 쪽만 두둔하는 듯하지만 실은 이 캠페인은 고령화 시대를 앞둔 어르신 세대가 젊은이로부터 존엄성을 대접받고 세상 속에서 노년 세대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를 되묻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르신 세대가 제대로 어른 대접받고 어른다운 역할을 하며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르신들이 대접받고 잘 사는 방법으로 '다섯 가지의 끈'을 말들 합니다.

첫째는 '질끈'입니다. 세상 살 만큼 살아오면서 산전수전 겪느라 감성에 티눈이 박이다시피 된 어른답게 좀 둔해지시라는 말입니다. 웬만큼 맘에 안 드는 꼴을 봐도 눈 질끈 감고 살자는 겁니다. 자식이 좀 모자란 짓 해도 눈 질끈 감고 참아주고 세상이 좀 섭섭하게 대하고 무시해도 모른 척 못 본 척 눈 질끈 감아주자는 겁니다. 11字(자)짜리 잡탕 정당이 설치며 심기를 건드려도 목까지 올라오는 욕 꾹 누른 채 질끈 눈감아주시라는 얘깁니다.

두 번째 끈은 '매끈'입니다. 노년의 추함엔 老慾(노욕)과 老貪(노탐)에 의한 정신적 추함도 있지만 주름진 모습의 육체적 추함도 있습니다. 노년의 존엄을 대접받고 살려면 일단 모습부터 매끈해야 합니다. 듬성듬성 풀기 없는 머리칼이나마 맵시 나게 빗고 로션 정도는 슬쩍 바르고 공짜 전철 타야 더 대접받습니다. 허리띠도 매끈한 것 매는 게 좋답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미리미리 허리띠와 패션모자, 머플러 몇 장, 구두 몇 켤레쯤은 여벌로 미리 모아두는게 '매끈 노년'을 대비하는 겁니다. 손자새끼도 이왕이면 매끈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더 따르는 법입니다.

세 번째 끈은 '따끈'입니다. 나이 들어 돈 없고 힘 빠지면 자격지심으로 젊을 때 없던 콤플렉스까지 생겨납니다. 며느리 말투 하나에도 공연히 심기가 틀리고 고스톱판의 30년 친구 농담도 괜스레 시비조로 들리기 십상입니다. 그럴수록 서운함, 배신감 대신 따끈한 마음을 추스르십시오. 포용과 사랑과 용서 같은 따끈한 마음이야말로 어렵지만 노년 세대가 꼭 지녀야 할 '끈'의 덕목입니다.

네 번째는 '불끈'입니다. 팔다리 힘 빠지고 안경 놓아둔 자리 하루에도 몇 번씩 잊어먹는 세월이 되면 만사 의욕이 주저앉고 지난날 패기는 가물가물 지는 노을빛처럼 사위어 가게 마련입니다. 육신에 기력이 빠질수록 두 주먹 '불끈' 쥐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겁니다. 가슴속에 꺼져가는 잔불을 뒤적이지 마시고 활활 타는 미래의 새 불꽃을 지피십시오.

다섯 번째는 '너끈'입니다. 처진 어깨와 함께 위축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숱한 세상 풍파 너끈히 헤쳐온 노련한 經綸(경륜)으로 남은 삶 또한 고독과 결핍을 너끈히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그 너끈함이야말로 어르신들의 노년을 강하게 지켜줍니다.

'질끈'의 포용과 곱게 늙으신 '매끈'한 모습, 젊은이를 사랑해주는 '따끈'한 가슴과 끊임없이 '불끈' 솟은 용기, 그리고 '너끈'한 여유로움으로 무더운 여름 건강히 보내시기를.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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