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김선굉 作 '못박기'

못박기

김선굉

거실의 벽에 붙어서서 못을 박는다. 세멘못을 박는 방법은 서서히, 점진적으로, 하염없이 망치질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힘차게 몇 번 박아주는 것이다. 요즈음의 못은 불꽃을 튀기며 부러지거나 든든히 박히거나 하지만, 왼손을 타고 흐르는 전율은 늘 불안하고 이가 시리다. 오히려 망치가 상하는 오늘의 못박기여. 드릴로 대문의 철판을 뚫어 보조키를 달고, 염산을 자욱이 부어 하수구를 뚫는 일들이 필요한데, 이런 건 다 높이높이 벽을 쌓는 일이며, 안으로 캄캄히 저무는 일에 다름 아니다. 알미늄 파이프를 잘라 잇고 볼트와 너트를 조여 방범창을 만드는 인부에게, 더 든든히 죄어 달라고 당부하며 안심하는 내 어두운 가슴에 견고한 빗장 삐꺽 질린다.

철물점에 갔더니 오만 종류 못이 다 있다. 지붕못, 둥근못, 나사못, 평머리못, 갈고리못……. 농경시대 못은 나무를 다룰 때 사용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무른 쇠못이 사라지고 콘크리트못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기실 못박기는 나무에 못을 박아 넣을 때 가장 즐겁다. 망치질할 때 전달해오는 적당한 탄력을 즐기며 '서서히, 점진적으로, 하염없이' 박아 넣는 망치질의 즐거움. 그것은 성적 쾌감에 가깝다. 못박기의 원리는 사람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조금씩 서로 알아가면서 다가서는 밀고 당김의 미학. 그러나 이 시대의 사랑법은 '도 아니면 모'다. 도무지 간격이 없다. 그러니 세상의 벽은 높이높이 올라가고 가슴에는 견고한 빗장이 삐꺽 질린다. 아, 살벌하여라 불꽃을 튀기는 이 시대의 못박기여.

장옥관(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