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터치)광주 비엔날레 감독 박사학위 파동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선임된 한 대학 교수의 박사 학위가 가짜였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가짜 논란이 문화예술계와 대학가는 물론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를 교수로 임용한 대학, 큐레이터를 맡겼던 미술관, 감독으로 뽑은 비엔날레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들어 우리 사회의 진실 검증장치 미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에서는 실력보다 학벌과 간판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다른 쪽에서 잡아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양자는 얼핏 비슷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따지고 들면 정반대의 주장으로 갈라질 수도 있다. 학생들은 양쪽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 뒤 한쪽 입장에서 다른 쪽의 논리적 허점, 현실적인 문제점 등을 비판하는 훈련을 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 검증 시스템 갖추자

대학 교수나 비엔날레 감독에 뽑힌 절차를 보면 문제의 심각함이 금세 드러난다. 교수를 임용하면서 성적증명서조차 받지 않고, 박사학위증 진위를 팩스 한 장으로 확인했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감독 후보 추천 과정과 배경도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그는 교수로, 감독으로 선임됐으니 향후 검증 시스템 부재의 단골 사례가 될 만하다.

'예일대와 한국학술진흥재단 인터넷 사이트에도 박사 논문이 없는 그를 채용한 것은 교수임용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광주비엔날레의 예술 감독 선정 과정이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짜 학력 논란이 불거져 대학에 사표를 쓴 그를 감독에 앉혔다. 검증 장치가 단단히 고장났다는 얘기다.'(신문 사설)

외국 대학 박사 학위는 취득자가 귀국 후 6개월 안에 학술진흥재단에 신고하면 된다. 의무가 아닐 뿐만 아니라 검증할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 역시 교수 채용 때 학위의 진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왔다. 언제 어디서든 가짜 파동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가짜 박사학위 사건을 계기로 좀 더 발전적인 검증 및 등록 절차를 마련해 우리 사회에서 박사학위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외국 박사학위에 대한 단순 신고가 아니라 확실한 검증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신문 칼럼)

학위 검증을 단순히 대학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경쟁력으로 보고 검증 시스템을 요구하는 주장도 있다. '외국 학위 위조는 갈수록 쉬워지고 있다. 거짓 학위가 횡행하면 지식기반사회는 무너진다. 일본 정부는 최근 전국 대학 교수들의 가짜 학위 실태를 조사키로 했다고 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제대로 된 학위 검증 시스템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지식 경쟁력이 커진다.'(신문 칼럼)

학위 검증만 중시하고 실력을 외면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게 사태의 본질이라고 반박한다. '진짜는 진짜로서 제대로 대접받는 게 마땅하지 이를 좇는 사회 분위기를 탓하는 건 본말이 바뀐 격이다. 진짜는 그만큼 얻기 힘들다. 많은 노력과 공이 들어간다. 돈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게 실력이다. 이름에 걸맞은 분명한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신문 칼럼)

▨ 간판 중시부터 바꾸자

이번 파문의 주인공은 그동안의 경력만 놓고 보면 해당 계통에서 손에 꼽힐 정도였다. 가짜 학위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대학 강의는 물론 비엔날레 감독 역할까지 잘 해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우리 사회의 학벌 중심주의, 간판 우선주의가 빚어낸 블랙 코미디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실적과 경력을 보면 괜찮은 증명서라는 게 예술계와 학계에서 실제로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그 간판이 능력과는 크게 상관없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솟는다. 우리 예술계는 어떤 사람의 실력을 정확히 감정할 능력이 부족해서 그들의 학력이나 이력으로 그에 대한 평가를 때워 보려는 풍토가 생기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신문 사설)

검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과 갈라지는 것도 이 대목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학위라는 것이 업적이나 전문영역의 활동과 아무 인과관계가 없다고 의심할 만한 상황들을 접하게 되면서 오히려 증명서에 많은 것을 의존했던 간판 시스템의 부작용이 부각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학위와 관련된 어설픈 검증을 탓하며 앞으로 더 철저한 검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신문 칼럼)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전문직은 꿈도 꾸지 못하고, 패배자의 대열에 설 것을 요구하는 사회는 잘못됐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교육을 통해 부가 세습되고 계층이 고착화하는 현실을 깨기 위해서라도 학벌 중심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그것도 자신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부모 가난 때문에 학력을 만들지 못한 재능 있는 청년들이 좌절을 겪고 있다. 이들의 재능이 사장됨으로써 오는 사회적 손실도 엄청나다.'(신문 칼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 생각을 바꾸면

최근 미술계가 잇따른 악재에 중병 앓는 환자 취급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리의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가짜 박사 학위 사건이 터졌고, 가짜 작품이 판을 친다는 비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작고한 백남준 씨는 "예술은 사기다."라고 외친 적이 있다. 미술계가 겪고 있는 파동과 비교해서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다. 그림은 본사 이공명 화백이 12일자 매일신문에 게재한 4컷 만화다. 그림을 보면서 ▷백남준 씨의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열정과 재능과 능력이 더욱 중시되는 예술계에서 학위는 어떻게 취급돼야 하는지 ▷학위 검증과 실력 검증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시급한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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