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전광판이 '파란색'으로 뒤덮였던 지난 26일과 27일, 그리고 30일 낮까지. 대구시내 각 은행과 증권사에는 대기행렬이 줄을 이었다.
대구시내 증권사 가운데 펀드 판매 점유율 1위라는 모 증권사. 이곳 지점마다 대기번호표는 150여 명을 넘었다. 우리 증시가 죽을 쑤면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펀드 수익률도 떨어지게 마련. 하지만 대기표를 집어든 아주머니·아저씨들은 펀드를 환매, 현금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펀드에 가입하려는 신규 투자자였다.
"주식시장이 떨어져 불안하지 않으냐고요? 어휴, 무슨 말씀이세요. 펀더멘털인가, 뭔가, 우리 자본시장의 기초체력이 좋아졌다잖아요."
"거, 뭐냐, 자본시장의 르네상스라잖아. 르네상스 알아요?" 30일 낮 한 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한 40대 여성과 친구인 듯한 또 다른 여성은 자신감에 넘쳤다.
이런 가운데 개인과 기관은 외국인들의 강력한 매도세에도 불구,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모두 '사자'에 나서면서 30일 오후 화살표를 다시 '빨간침'으로 돌려놨다. 미국발 조정이 시작되면 으레 '투매'가 이어지면서 정신없이 내려가던 것이 과거 우리 증시였다.
◆개미들이 달라졌다
26일부터 30일 낮까지 코스피지수는 한때 1,860선까지 밀리는 등 큰 폭의 하락세를 겪었다. 하지만 이 시기, 개인들을 중심으로 펀드 환매가 일어나기는커녕, 가입자가 폭증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가장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찾는다는 은행. 대구은행의 경우, 지난 26일과 27일, 30일 낮까지 평소보다 더 많은 펀드 가입이 이뤄졌다.
하루 주식형 펀드 순증액을 기준으로 조정 첫날인 26일엔 122억 원이 늘었고, 27일엔 94억 원, 28일 오후 2시까지 하루에 116억 원이 증가했다. 이달 들어 대구은행 각 지점 창구를 통해 이뤄진 하루 평균 주식형펀드 순증액은 60억 원 규모. 하지만 조정이 이뤄진 사흘 동안 평소보다 2배 정도나 많은 펀드 신규 가입이 몰려들었다.
대구은행 집계결과,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지난 3월 불거졌을 때만 해도 신규 펀드 가입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달 들어서는 큰 폭의 조정이 나타났는데도 환매액보다 신규 가입액이 5, 6배나 많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양인식 대구은행 제휴사업부 부부장은 "코스피지수가 지난 사흘 동안 100포인트 이상 순식간에 빠지면서 투자자들이 '이때다'라는 생각을 하고 펀드 시장으로 진입하는 것 같다."며 "과거엔 주가가 내리면 환매 문의가 빗발치면서 투매로 이어졌지만, 이번 경우를 보면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이 굉장히 강해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이승수 CJ투자증권 대구지점장은 "주가 조정이 이뤄진 최근 사흘간 펀드 가입 고객들이 폭증, 개점이래 처음으로 대기번호표 발급기를 만들었다."며 "자본시장에 완전히 탄력이 붙었다."고 했다.
한편 주가가 반등한 30일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5천615억 원을 매도하며 11거래일째 매도 공세를 펼쳤으나, 풍부한 펀드 자금을 바탕으로 한 기관은 4천679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이끌어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6일 기준 펀드 수탁고는 262조 7천169억 원으로 1999년 7월 22일 세운 종전 기록 262조 5천660억 원을 넘어 8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주식형 펀드 수탁고도 72조 원을 넘어섰다.
30일 한국증권업협회에 따르면 27일 기준 고객 예탁금도 전날보다 794억 원 늘어난 15조 7천45억 원으로 집계됐다.
◆경계심은 가져야
우리 증시가 최근까지 무섭게 달려온 힘의 밑바탕에는 국민재테크로 부상한 펀드 등 '투자의 시대'로 옮겨간 국내 자본시장의 변화도 있었지만,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유동성 랠리'의 영향도 컸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최근 두 달 동안에만 8조 원 가까운 주식을 국내에서 팔아치웠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동성 랠리'의 마침표가 멀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선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은 고위험 자산으로부터 돈이 빠져나와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빌미를 제공, 전세계 주식시장을 뒤흔들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진다.
실제로 지난주 후반 뉴욕 증시는 유동성 위축 우려로 이틀 동안 4% 가까이 급락했으며,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주요 증시도 3% 이상 떨어졌었다. 또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근 11거래일 동안 4조 7천억 원대 순매도를 기록한 것도 안전자산 선호 추세를 대변하고 있다는 설명.
강성곤 미래에셋 금융프라자 대구 상인지점장은 "조정에도 불구, 펀드 가입 고객이 오히려 늘어나는 등 우리 자본시장이 매우 냉정해졌다."며 "하지만 외국인들이 매도세를 이어가고 있어 이 부분이 가장 큰 불안요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일본의 저금리 상황이 반전될 경우, 또 하나의 글로벌 유동성 축소 요인이 될 수 있어 이 역시 우리 주식시장의 상승국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 주가 조정이 이뤄진 26일부터 3거래일 동안 펀드 가입이 폭증했다. 펀드 대기 수요가 폭발한 것. 사진은 손님이 몰려들면서 개점 이래 처음으로 대기번호표 발급기를 설치한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CJ투자증권 대구지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