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그는 광주에 있었다. 금남로에서 시위대에 포위돼 있다가 공수특전단의 '맹활약' 덕분에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이후 전남도청 경비를 섰다. 공수특전단의 폭력 진압에 맞선 시위대의 버스가 도청 정문으로 돌진할 당시 그는 현장에 있었다.
시위대가 무기를 들고 '시민군'이 되어 전남도청을 공격하자, 건물 안으로 후퇴했다. 탄환이 머리 위로 비 오듯 쏟아졌다. 그의 부대장은 즉각 해산과 부대 귀환을 명령했다. 옆을 돌아봤다. 순간 苦樂(고락)을 함께했던 동료들은 아무도 없었다. 멍했다.
정신을 수습한 그도 허겁지겁 전남도청 뒷담을 넘었다. 막막했다. 무거운 진압복부터 바꿔 입어야 했다. 도청 부근 가정집 담을 넘어 빨랫줄에 널린 트레이닝복을 훔쳐 입었다. 이어 부대가 있는 함평까지 무작정 걸었다. 50km 이상을 걸어 부대에 도착했으나 그 날 귀대한 동료는 절반에 불과했다.
전투경찰이었던 필자의 친구가 겪은 '광주항쟁' 현장의 기억이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에 있던 1980년 5월 광주가 되살아나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광주를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지난주 개봉됐다. 대구 출신인 감독은 '1980년 광주'라는 무거운 소재를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그 때문인지 영화는 개봉 4일 만에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대박' 조짐이 보인다는 소식이다.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 필름을 되돌리듯이 차분한 시각을 유지했다. 간간이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에피소드를 삽입해 계엄군의 '과도한 폭력' 사용조차 순화시키는 재치를 보였다. 유머조차 블랙 유머가 유행했고, 대화도 관계 형성을 목적으로 한 '수다'가 아니라 상대 제압을 위한 '구라'가 판을 치던 시대를 살았던 '심각한 세대'가 가질 수 없는 여유였다.
그러나 영화와 현실이 오버랩되면서 필자의 마음은 불편해졌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군대를 '정권 찬탈의 私兵(사병)'으로 동원해 국민을 무참히 살해한 장본인은 전 재산 29만 원으로 골프와 해외 여행을 즐기며 '화려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대구를 비롯한 영남인들이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한 때문은 아닐까. 영화 '화려한 휴가'는 영남인들이 언제까지 지역정서의 볼모 상태로 있을 것인가를 묻고 있다.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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