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淸凉山)은 여름에 찾아가기 좋은 산이다. 이름 그대로 시원하다. 870m로 높지도 않다. 계곡도 풍부하다. 가족들과 함께 찾아나서기에 안성맞춤이다. 인근의 이나리강에서는 래프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청량산이나 봉화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는데 대한 아쉬움도 있다. 봉화는 우리 마음속 잃어버린 고향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잠시 떠나있고 싶을 때 봉화 청량산으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혼자든, 둘이든, 가족과 함께 가든 청량산은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준다.
청량산은 유불사상의 전통이 공존하는 명산이다. 퇴계 이황 선생은 "청량산을 가보지 않고서는 선비노릇을 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청량산을 아꼈다. 청량산은 고려 말 공민왕과 노국 공주가 홍건적의 난의 피해 잠시 머물면서 기도를 올린 곳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청량산 주봉인 장인봉에 올라 운무에 휩싸인 산자락을 내려다보면 구름을 타고 있는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니면 산중턱에 자리 잡은 청량사에 들러 하룻밤 유숙한 뒤 새벽 예불시간에 일어나 새벽 풍경을 음미하는 것은 어떨까.
'청량산인'을 자처하는 청량사 주지 스님은 시인이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는 세계의 저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저녁연기 가늘게 피어오르는/ 청량의 산사에 밤이 올까….(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선학정에서 곧바로 청량사로 올랐다. 가파른 언덕길이 고행의 길처럼 느껴졌지만 10여 분 오르자 산사의 기운이 느껴졌다. 목탁소리도 아득하게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 청량사에서 어린이 여름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어린 불자들을 대상으로 저녁 공양 예법을 가르치느라 스님은 바쁘게 움직였다. 저녁 공양은 밥 한 공기와 국 한 그릇, 단무지와 김 몇 장이 전부로 소박했다. 무엇보다 어린 불자들의 저녁 공양이 노송과 석탑 앞에서 이뤄지고 있어서 색다른 분위기가 났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신라고찰이다. 청량사 바로 뒤로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청량사 대웅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는 뜻의 유리보전(琉璃寶殿)이다. 약사여래불은 닥종이로 만들어졌고 현판 글씨가 공민왕의 친필이다. 이곳에는 신라 때 27개의 대·소암자가 있었을 정도로 신라불교의 요람이었다.
여름캠프가 아니더라도 청량사에서 하룻밤을 청해 자면서 산사에서의 명상을 체험할 수도 있다. 청량사 바로 옆 청량정사(오산당)는 퇴계 이황 선생이 수도하면서 성리학을 집대성한 유서깊은 곳이다.
청량산에는 그 밖에 최치원의 유적지인 고운대와 독서당,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五馬臺)와 공민왕당(恭愍王堂), 공민왕이 쌓았다는 청량산성, 김생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 등도 있다.
청량산 등산은 선학정을 거쳐 청량사를 오르는 것보다 '입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낫다. 청량사만 보고 간다면 선학정 코스가 빠르지만 입석을 통해 산을 오르면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오산당과 청량사를 거쳐 주봉우리인 장인봉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내려올 때는 보살봉과 김생굴·외청량사를 지나 다시 입석으로 내려오면 된다. 청량산을 하루 만에 다 느끼지 못한다. 며칠을 두고 머물지는 못하겠지만 청량산은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고 싶은 산이다.
글·사진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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