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방학이 되어 시간도 나고 하니 도서관에서 소설이나 빌려서 좀 읽어야겠다" 며칠 전 한 동료 교수가 지나가는 소리로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러워졌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가 문학 쪽과 관계없는 분이었기 때문이고, 소위 프랑스문학을 전공한다는 필자가 전공 이외의 책을 별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기 때문이다.
중국·일본 등 동양문학이나 철학을 전공하는 교수들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사석에서는 자연스레 동양의 문학이 화제로 많이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거기에 끼어들 수 없음은 물론 우리 주변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수치심까지 들기도 했다. 전공인 서양문학에만 관심 가지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몰라도 그것이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요즘 신문을 보면 책을 너무 안 읽는다는 말이 많이 회자된다. 프랑스 사람들이 바캉스용품에 책을 끼워 넣어두었다가 일광욕을 즐기며 독서를 하는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대학 당국에서는 신입생들에 대한 설문조사 후 우리나라는 물론 동서양의 고전을 읽은 학생이 극히 적은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고등학교까지의 현 교육풍토에서도 그렇고, 취업이란 것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금 대학교육에서도 독서를 권장할 명분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당연하다고 여길 사람이 많겠지만 학생들에게 독후감을 과제로 제출하라는 일이 많아진 것도 새삼스럽다.
사실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독후감을 과제로 낸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원서 몇 페이지 읽다보면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가버리는 수업량을 고려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작 작품은 읽어보지 않고 그것을 논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방학기간 동안 소위 '알바'와 취업관련 서적 및 영어에 목매있는 학생들은 문학서적을 읽는다는 일을 전공교육용으로만 여기는 것 같다. 소설가 윤대녕은 한 신문의 칼럼에서 재미있는 것에만 매달리는 오늘날의 문화현상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문화라는 것이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처럼 어느 정도의 능동적인 자기 투자와 이해의 노력이 필요한 품목'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전공에만 매달리고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게 되는 재미있는 문화에 잠식당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백찬욱 (영남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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