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를 위해 이국땅에 갔던 무고한 시민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된 지도 열흘이 넘어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들이 걱정에 잠겨있다. 이미 두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잡혀있는 인질들의 고통도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이 사건의 본질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이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절대적 가치의 하나인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들의 필요한 바를 얻으려고 하는 탈레반의 행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반인륜적 범죄라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 납치나 인질 그리고 이를 포함한 테러는 우리와 상관없는 말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이라크·나이지리아 그리고 소말리아 등 여러 지역에서 한국 사람들도 납치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심지어 애꿎게 테러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한국 사람들의 활동범위가 넓어진 것도 그렇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아프가니스탄의 경우처럼 납치나 인질 그리고 이를 포함한 테러의 확대가 한국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부시 대통령의 장담(?)과는 달리 세상은 점점 불안하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었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 특히 부시 정권의 일방적 패권주의가 테러 증대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세계 도처에서 테러 관련 사건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당장 우리 국민들을 억류하고 있는 탈레반의 경우, 미국의 침공으로 권력을 상실하고 테러 집단화되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부시 정권 때문에 생겨난 집단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부시 정권이나 미국이 아니라 근대 이후의 제국주의적 침략이라는 차원으로 시각을 넓혀 본다면, 탈레반 존재의 원인은 소련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에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현재 가장 불안정한 나라의 하나인 이라크도 그렇고, 해적(혹은 군벌)이 창궐하는 소말리아, 참담한 학살의 현장인 수단의 다르푸르, 만성적인 분쟁지역인 레바논과 팔레스타인도 근대 이후 제국주의 국가들의 무분별한 침략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정치·경제적 이해를 달성하기 위해 때로는 군대를, 때로는 종교와 사상을 앞세워 남의 나라를 지배했던 국가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를 저지하려던 미국의 대소 정책의 산물이었던 무자헤딘이나 탈레반에 대한 미국이나 소련의 태도가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세계적 분쟁지역이라고 하면 마치 해당국가나 국민들의 문제로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잔인무도한' '반인권적'인 테러집단과 이들의 문화(국민성과 종교성을 포함하여)가 원인이고 본질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분열과 상호 적대감 확산은 전적으로 제국주의 지배정책의 산물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식민지 경험 이후 둘로 나뉘어 '피 튀기게' 싸우고 있는 우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주의 식민지 경험으로 여전히 아픈 우리 국민이 또 다른 역사의 피해지역에서 겪는 고통은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구 못지않게 제국주의의 아픈 역사를 아직도 겪고 있는 우리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나 레바논과 같은 국가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명분이야 어떻든 간에 현지사람들은 우리를 가해국가의 군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납치사건의 본질을 따져보는 것이 탈레반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인질의 안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비판하고, 가능하다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들의 행위와 존재 자체에 책임이 있는 국가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들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작지 않은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들에게는 입을 닫고 있는 것일까?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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