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VIP 증후군'

미국의 속어에서 비롯된 말로 우리도 많이 쓰는 '징크스'라는 단어가 있다. '~할 때면 꼭 ~하다.'는 경우에 쓰는데 주로 나쁘거나 불길한 경우에 많이 쓴다. 운동선수들이 많이 쓰기도 하지만 의료현장에서도 그렇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VIP 증후군'이다. 반드시 용어 그대로 매우 중요하거나 높은 지위가 아니더라도 서로 상당히 어려운 사이, 또는 여러 곳으로부터 부탁을 많이 받은 환자에게서 탈이 생기는 경우를 빗대는 말이다. 언뜻 보면 미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재수없이 우연히 생긴 '천재'(天災)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 자초한 '인재'(人災)에 속함을 알 수가 있다. 이런 현상을 초래하는 원인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있다.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그 원인을 추정해 본다.

첫째, 의료는 전문분야에 속하고 이른바 '전문가'는 같은 작업을 자주 하게 마련인데 의사가 '늘 하던 일'을 '늘 하듯이' 하지 않는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 VIP 환자의 편의를 위해서 늘 하던 검사나 처치를 생략하는 경우나, 그 반대로 늘 하던 것보다 지나칠 정도로 더 자주, 더 꼼꼼히 치료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이 되겠다. 어떻게든 잘 해 주려는 의도겠지만 양쪽 어느 것이든 탈이 날 소지가 많다. 일단 탈이 난 뒤에는 입장이 오히려 난처하고 원칙에서도 벗어난 것이라서 핑계도 군색하다.

둘째, 이렇게 '늘 하던 일'도 그렇지만 '늘 하던 사람'이 바뀌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늘 하던 일을 VIP 환자의 격에 맞추어 업그레이드 한답시고 전문의가 '한동안 하지 않던 일'을 애써 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것을 빗대어 진료현장에서는 '손(을) 바꾸면 탈(이) 난다.'라는 징크스가 있다.

셋째, 말 그대로 VIP 환자다 보니 의사의 지시를 잘 안 따르거나 무시하는 경우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환자의 직업이 의사일 때이다. 스스로도 워낙 잘 아는 만큼 일반적인 규칙과 원칙 가운데 본인에게 불편한 것은 무시하는 수가 많다. '아는 것이 병'이란 말이 여기에도 해당된다. 진료하는 의사의 입장으로는 동료 의사가 아플 때 환자로 찾아 주면 무척 뿌듯하고 감사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아뿔싸! 제발 별 탈 없어야 할 텐데….'라는 걱정이 앞서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VIP 증후군의 원인을 몇 가지 나열해 봤지만 현장에서의 느낌으로는 역시 의사 쪽의 원인, 즉 첫째와 둘째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누군가 학문적 진리는 보편성과 타당성 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고 했지만, 병이 낫는 데에도 '특별' 이나 '특수'한 것이 아닌 보편적이고 타당한 경우를 따르는 것이 해답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과거 대학병원장, 의대학장이 잇따라 작은 수술을 받은 뒤에 상처가 곪아 터지자 당시의 외과 주임교수였던 은사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하셨다.

"제발, 내가 아프면 아무렇게나 잘 해 다오!"

정호영(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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