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 한잔의 단상] 모기 전쟁

강적을 만났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인데도 적은 나를 알고 나는 적의 실체조차 확인하지 못한 상황. 소등이 완료된 밤 11시 11분, 눈꺼풀이 의식을 제압할 시간 왱~! 공습경보가 울립니다. 모기의 선전포고, 일직선으로 쇄도해옵니다. 찰싹! 뺨이 얼얼할 정도의 강한 장력 일타, 제압된 것일까?

5분정도가 지납니다. 또 다시 적 출현, 왼쪽 천정부근에서 시작된 굉음이 직선으로 내리꽂힙니다. 정신집중, 적기와 뺨의 임팩트 순간을 계산합니다. 철~썩! 강도와 속도강화. 성공확신. 피 떡이 된 적을 상상하며 확인 차 불을 켭니다. 손바닥, 침대보, 바닥을 차례로 살핍니다. 시체가 없습니다. 자해의 아픔으로 양쪽 뺨이 달아오릅니다.

엎치락뒤치락, 작전구상에 몰입합니다. 모기약으로 독살, 모기향으로 질식사, 에어컨으로 동사, 파리채로 압사, 끈끈이 식충식물로 이이제이…. 거듭되는 지상탄병,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몰려옵니다. '에라 모르겠다. 실컷 먹고 배 터져 죽어라' 자포자기, 그대로 잠이 들고 맙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세면 후 거울에 비친 면상, 아! 군데군데 피어난 홍화! 피 빨린 흔적입니다. 적의 공격에 처참하게 당하고 만 것입니다. 분노가 치밉니다. 수 천 년 억눌린 민족적 부채도 엄청난데 모기에게까지 피를 강탈당한 것입니다. 사생결단을 준비합니다. 잡기만 하면 빨린 피를 쪽- 회수할 결심을 합니다.

강력한 대응책, 모기약 한통을 몽땅 살포하고 향까지 피웠습니다. 독살과 질식사 이중보장 작전, 초토화를 장담합니다. 작전종료,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다는 기대로 모처럼 일찍 잠을 청합니다.

11시 11분, 얼핏 적기의 엔진소리가 들립니다. 황당합니다. '아니 방독면 착용한 모기가?' 작전실패? 현장검증에 착수합니다. 모기의 시체 한구가 발견된 창틀을 중심으로 조사를 시작합니다. 아! 창문과 문틀 사이의 틈새, 일개 소대규모의 모기부대가 머리를 쳐 박고 심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대학의 낡은 기숙사, 그 전략적 환경을 아는 모기, 무지몽매한 나, 신사모기의 친절한 공습경보조차 개를 몽둥이로 때려잡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일맥상통하는 것을 알고서야 나는 모기전쟁의 패배자임을 알았습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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