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동국대 교수의 학력 위조 파문을 전후해 가짜 학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서울에서는 강남 학원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졌고, 일부 유명인들은 양심선언처럼 그동안 속여온 학벌을 고백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거냐?", "누구 누구도 가짜 아니냐?", "이 참에 가짜를 싹쓸이하자."는 여론이 팽배하고있다.
◇ 대구에서도 학력 위조 적발해
서울에서 경찰이 강남지역에서 활동하는 학원 강사들의 학력 위조 여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선 것에 맞춰 대구에서도 허위학력 학원강사에 대한 단속이 이뤄졌다. 지난 주 대구 북부경찰서는 위조한 졸업증명서를 사용해 학력을 속이고 취업을 한 혐의(공문서 위조 등)로 대구지역 모 고시학원 형법 강사 김모(40) 씨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대구 동부, 남부, 서부교육청으로부터 대구지역 입시학원 및 성인고시학원 840곳의 전'현직 강사 6천여 명에 대한 졸업증명서 및 관련자료 일체를 제출받아 사실 여부를 수사했다. 수사 결과 입건된 13명 중 대학 중퇴, 즉 고졸 학력을 대졸로 속인 사람이 11명이었고, 학력을 높인 사람이 1명, 실제 상업계 고고를 졸업해놓고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속인 사람이 1명이었다. 대학 중퇴자들은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경북대, 영남대 등으로 다양했다. 이들 중 현재 학원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사람은 4명 뿐이었고, 나머지 9명은 이미 강사활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퇴직자 중 1명은 현직 공기업 직원으로 밝혀졌다.
학력을 속인 이유에 대해 이들은 한결같이 "대학을 중퇴할 경우, 강사 결격사유가 되는 것으로 알고 속였다."고 답했다. 입건된 사람 중에는 전남대 법대를 졸업해놓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것으로 속인 경우도 있었다. 현재 모 공무원고시학원에 재직 중이며 일주일에 이틀 수업을 하면서 월 200만 원 수입을 올린다고 했다. 강사 경력만 벌써 5년째. 서울지역 고시촌에서도 학력을 속이고 강의를 한 경력이 있으며, 고시생들 사이에 실력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학원측에서 스카웃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이밖에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고 속여 지역 입시학원에서 사회탐구영역 유명 강사로 활동하던 사람도 있었고, 한양대 법대를 졸업했다며 고시학원에서 세법과 국어를 가르친 강사도 2명이나 있었다. 이들은 실제 학원 강의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매월 150만~200만 원씩 받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업계 고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오모(47) 씨는 서울지역 유명 사립대 졸업장을 위조해 고시학원에서 세법 관련 강의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입시학원의 경우, 수성구 지역에서 대부분 적발됐다.
이들 13명 중 2명은 인터넷을 통해 위조 전문업자에게 30만~50만 원을 지불하고 졸업증명서를 위조했다. 나머지 11명은 자신이 직접 특정대학 졸업증명서를 구한 뒤 스캔작업을 통해 위조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북부경찰서 최윤혁 경사는 "위조 과정이 너무 간단해서 놀랐다."며 "졸업증명서를 스캐너로 읽어들인 뒤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름과 사진만 바꾸면 감쪽같이 진짜 졸업증명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찰은 위조 작업을 대행해준 전문업자 이모(31) 씨의 소재도 추적하고 있다.
◇ 학력 속이기, 곳곳에 팽배해
공문서를 위조해 경력을 속이는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입시학원 강사를 한 적이 있다는 정모(37) 씨는 "학원에 실제 졸업증명서를 제출해도 학원장이 이를 속일 것을 종용하는 경우도 적잖다."고 했다. 때문에 실제 영어를 전공하지 않았던 정 씨는 영어과목을 맡았다는 이유로 공대 출신이 아니라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출신으로 학원 광고전단지에 소개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정 씨는 "예전 일이기는 하지만 당시만해도 이런 눈속임이 비일비재했고, 이에 대한 확인이나 단속도 전혀 없었다."고 했다.
달서구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최근에는 학원 강사를 하려는 사람도 많고, 학력도 학원측이 원하는 기준에 미달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속이려고 할 필요가 없다."며 "게다가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고, 일부 극성스런 학부모들이 대학측에 전화를 걸어 학력 여부를 확인하는 일까지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드러내놓고 전공이나 출신대학을 속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학원 한 관계자는 "아직 대구는 서울에 비해 양반인 셈"이라며 "일단 대구라는 지역 자체가 워낙 좁아서 특정 대학 출신이라면 알음알음으로 연결이 되고, 게다가 학력을 속여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서울에 비해 훨씬 적다."고 했다.
이번 신 교수 사태로 학력 위조에 대한 급제동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를 적발해낼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없이는 근절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내 유명 대학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중국 등 해외에서 위조해 국내로 밀반입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인천공항세관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특급탁송화물로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위조 공문서 및 사문서가 모두 12건 70여점에 달하며, 이들 중 위조된 국내 대학 졸업증명서가 26점, 성적증명서가 10점으로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는 것. 과거에는 여권'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 등 위조 신분증 밀반입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졸업증명서'성적증명서 등 학력 위조 서류 밀반입이 늘고 있다. 인천공항세관 관계자는 "위조 서류는 국제 특급탁송화물을 이용해 상업용 서류, 홍보용 팜플렛 등으로 숨겨 검사를 피하려 한다."고 밝혔다.
◇ 왜?
KBS 라디오 인기 프로그램인 굿모닝팝스의 진행자 이지영 씨가 학사와 석사 학위를 속였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 얼마 전 만화가 이현세(51) 씨는 최근 출간된 골프 만화 '버디' 3권에서 자신의 학력이 대학 중퇴가 아닌 고졸이라고 털어놓았으며, 산문집 '연탄길'로 유명한 입시학원 강사 출신 수필가 이철환 씨도 학력에 대한 양심선언을 했다. 영화 '디워' 개봉을 앞둔 심형래 감독도 그동안 고려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대한민국 대표 만화가로 꼽히는 이현세 씨는 "내게 남은 마지막 콤플렉스가 학력"이라며 "만화가 히트한 뒤 사람들이 '어느 대학 나왔느냐'고 묻곤 했는데 만화가라면 한수 내려보는 풍토에서 차마 '고졸'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실력과 학력을 동일시, 오히려 학력을 실력보다 우선시하는 사회 풍토상 학력 속임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대구 한 입시학원 원장은 "서울지역 사립대 출신 강사와 대구 사립대 출신 강사를 비교해 보면, 수업내용이나 강의법은 대구 강사가 훨씬 뛰어난데도 서울 강사는 전단지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도 일단 좋은 쪽으로 난다."며 "특히 강사의 경우 자신이 아는 것과 아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상당히 다른 문제인데도 그저 학력만으로 판단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학력 위조가 판치는 이유로 느슨한 법적 처벌도 들 수 있다. 형법 231조에 따르면 학위 등 사문서 위'변조시 처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형'으로 돼 있다. 하지만 판례상 초범인 경우 사문서 위조를 의뢰한 측은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공소시효가 5년이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5년만 버티면 신분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데 벌금을 겁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현행법상 학원 홈페이지에 내걸린 강사의 학력 위조는 '사기'로 규정할 수 없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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