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말'에 관한 단상

수진은 스파게티를 돌돌 말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에이 나쁜 무식쟁이!" 지켜보던 영미가 "왜 그래?" 하며 눈을 크게 뜬다. "오늘 상담전화 중에 말이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남자한테 '선생님'이라 그랬더니 소장이 길길이 뛰고…."

영미가 아까보다 눈을 더 크게 뜬다. 수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 '교수님이시군요' 그래야지, 상대가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 이러잖아" 황당한 표정의 영미를 보며 수진은 스파게티를 한입 가득 넣고 씹다가 꿀꺽 삼킨다. "여기 생맥주 500이요. 오늘 추가 안주는 또 소장이야!" (Fade out)」

위 대본에 나오는 소장의 캐릭터를 분석해보면, 남성 우월주의에 빠져 근거 없이 여성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인물이다. 그러한 증상을 근간의 심리학 용어로는 '마초증후군'(macho syndrome)이라 한다. 강하고 똑똑한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부드러운 남성에 대한 거부감, 즉 마초 콤플렉스가 마초증후군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증상'에서 그치지 않고 소통불능으로 인한 사회생활의 장애로 이어진다.

소통하기 위한 소통(少痛)은 감내할 수 있지만 지나친 고통은 대화를 어렵게 만든다. 진의(眞意)는 오간데 없고 오직 언어가 갖는 외피상의 의미만으로 오해가 생기고 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공격하기 위한 직언, 넘겨짚기 위한 은유,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식의 밀어붙이기…. 모두가 바람직하지 못한 언어행태 일 것이다.

'영화'가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창작분야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예술이며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에서는 "사람 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괴물이 되지는 말자"라는 의미심장한 대사가 유명하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말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말'은 설사 그것에 지나친 은유가 있다 해도 정해진 네러티브에 따라 그 속뜻을 분석하게 되지만, 현실에서의 '말' 이란 해석상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생각과 감정 사이에 마음이 있다고 했던가? 진실의 왜곡은 '마음'의 결과이다. '언어'는 복잡 미묘한 것이어서 살아 숨쉬는 동안에는, '말'에 관한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말'로 인해 사람이 결코 '괴물'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소연(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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