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에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행복감, 자부심을 안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그들이 어느날 홀연히 세상을 떠나가면 가까운 혈육을 잃은 듯 묘한 슬픔에 잠기게 된다. 비록 그들과 실오라기만한 인연조차 없다 해도.
세계적인 영화 거장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나갔다. 지난달 30일 스웨덴의 명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89세를 일기로, 같은 날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도 94세 나이로 뒤따라갔다.
두 감독은 1950, 60년대 유럽 예술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작가주의 영화의 리더였다. 프랑스의 로베르 브레송 감독, 이탈리아의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과 동시대에 활동했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세계 작가주의 영화의 한 시대가 막을 내린 것 같아 허전한 마음 금할 길 없다.
그들은 '영화=사건과 줄거리'의 통념을 깨버린 이단아였다. 베르히만 감독은 대표작 '제7의 봉인'(1957)에서도 볼 수 있듯 神(신)'구원'죽음 등 근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을 독특한 영화적 언어로 보여주었다. 안토니오니 감독 또한 '라 벤투라'(1961), '태양은 외로워'(1962) 등의 작품들을 통해 산업화사회 속의 고립, 일상 속의 지독한 허무감 등을 특유의 영상으로 표현했다. 관객을 때로 곤혹스럽게 만드는 난해한 영화들이었다.
작품의 템포 또한 하염없이 느리다. 때로는 너무도 지루할 정도여서 엄청난 야유와 혹평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석처럼 반짝이는 창의적 영화 언어가 역설적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매력 요소가 됐다.
베르히만 감독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히로인 잉그리드 버그만과 리브 울만은 세계적 명배우가 됐고, 안토니오니 감독 작품 속의 배우 모니카 비티 또한 1960년대의 우울한 낭만이 곁들여진 독특한 분위기로 영화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 세계 영화의 트렌드는 눈이 핑핑 돌 만큼 빠른 속도, 분출하는 인간 욕망의 극대화로 모아진다.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 흥행 대작이 지구촌 영화계를 주름잡고 있다. 기계화된 사회 속의 인간 소외와 고립, 소통 문제 등을 문학적'철학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설 자리가 없다. 그러기에 사라진 두 거장의 존재감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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