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구활 씨가 여섯 번째 수필집 '바람에 부치는 편지'(눈빛 펴냄)를 냈다. 옛 선비의 풍류와 멋을 그리고 있다.
"만약 정욕을 품고 이 선을 넘으면 선비께서는 짐승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보러 떠난 선비가 첩첩산골에서 혼자 사는 젊은 여인 집에 하룻밤 묵게 됐다. 여인이 이부자리에 선을 그으며 한 말에 선비는 찔끔해 아무 일 없이 아침을 맞았다. 그러자 여인이 하는 말. "아이구 짐승만도 못한 것. 차라리 짐승이 낫지."
율곡 이이가 기생 유지와 십여 년 나눈 사모의 정, 퇴계가 마흔 여덟 살에 관기 두향을 만난 얘기 등 선인들의 해학적인 삶과 인간 냄새 나는 풍류를 54편의 에세이에 담았다.
표제는 그들의 멋스런 삶에 보내는 손짓이다. '바람은 저 혼자 일 때는 바람이 아니다. 구름을 밀고 가거나, 죽림의 댓잎을 건드리거나, 솔숲 속에 의연하게 서 있는 소나무 사이를 지나갈 때 이는 소리의 움직임이 바람인 것이다. 나는 오늘 바람을 찾아 소나무 숲으로 간다. 그 숲 속에는 엊저녁 책에서 만난 학이 나의 빈 술잔에 송로주 한잔을 따라 줄지도 모른다.' 에로스적인 바람을 동양의 은은한 멋과 미학으로 승화시킨 은유다.
'팔할이 바람'이라는 지은이의 속되면서 또한 속되지 않는 풍류가 잘 묻어난다.
지은이는 매일신문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산하를 누비며 유람한 '하안거 다음날', 유년의 고향집을 그리며 쓴 '고향집 앞에서' 등 수필집을 낸 바 있으며 현대수필문학상, 대구문학상, 금복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238쪽. 1만 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