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대구시민야구장은 1만 2천여 명의 관객이 몰려 오랜만에 만원을 이뤘다. 평소 5천 석 채우기가 버거웠던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 중요한 경기가 아니었음에도 이렇게 관중이 몰린 건 이날을 대구 한 기업체의 날로 정해 입장료가 공짜였기 때문이었다.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먹는다.'고 하지만 공짜는 정말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공짜에 열광할까?
대구의 한 백화점에서 열리고 있는 여름 바캉스 기념 경품행사. 구매여부와 관계없는 이 행사엔 3천650만 원짜리 프랑스 푸조 207CC 자동차가 경품으로 나왔다. 자동차를 내걸었던 예년의 경품행사에 비춰 이번에도 경쟁률이 4만대 1을 넘을 것이란 게 백화점의 귀띔.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윙크를 받은 사람은 수천만 원이나 하는 외제 자동차를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800여만 원에 이르는 제세공과금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공짜로 외제 승용차를 얻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공짜로 무엇을 얻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올 여름 휴가철에 포항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은 주차료가 공짜다. 칠포 ,월포, 화진포, 도구, 구룡포, 북부 등 6개 해수욕장이 약 2천700면에 이르는 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했다. 포항시청 해양수산과 여주필 씨는 "지난 2004년 월포부터 주차장을 무료 개방한 결과 피서객 유치 효과가 뛰어나 올해엔 6개 해수욕장 주차장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며 "손님들은 공짜로 주차하고, 주변 상가들은 손님 유치로 매상이 오르는 윈-윈 효과를 얻고 있다."고 했다.
어렸을 적 꿈꾼 등대에서 공짜로 하룻밤을 보내는 무료 등대체험도 있다. 10여 평에 이르는 콘도식 시설에 침대와 소파도 있고, 숟가락부터 압력밥솥까지 취사도구도 잘 갖춰져 있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은 가덕도 등대, 울산지방해양수산청은 간절곶과 울기 등대를 각각 등대체험 장소로 무료 개방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초·중·고교생 체험학습, 가족 단위, 일반 국민 순으로 우선 순위가 주어져 경쟁률이 매우 높지만 공짜로 등대체험을 한다는 것은 평생에 남을 추억이 될 것이다.
한 항공사는 김포~제주 노선을 증편하는 것을 기념, 지난 10일 하루 동안 김포~제주, 제주~김포 탑승객 전원을 대상으로 무료 탑승 행사를 가졌다. 1천700여 명의 승객이 공짜로 제주를 오가는 비행기를 탔다. 추억의 소일거리(?)로 남아있는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인터넷 업체는 지난 달부터 무료만화방 서비스를 본격 오픈하기도 했다.
여름 휴가 때마다 고속국도 휴게소 및 국도, 휴양지, 해수욕장 등에서 자동차 업체들이 실시하는 '차량 무상점검서비스'도 대표적인 공짜 행사 중 하나다. 미국 정보기술(IT) 본산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서는 일부 업체들이 직원이 아닌 다른 회사 직원들에게 공짜 점심을 제공하고, 엔지니어들은 이 자리에서 점심 한 끼를 때우고 인맥도 쌓는 이른바 '런치 2.0'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업체들은 무료로 점심을 주면서 자사 제품 홍보도 하고 유능한 엔지니어를 스카우트하는 인재 확보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취업 포털이나 여행사 등의 주최로 기존 및 신규 회원 또는 여행정보를 제공한 사람을 상대로 해외 여행권을 주는 공짜 이벤트 행사도 앞다퉈 열리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 "거저 주진 않죠! 경품행사 빠짐없이 참여"…공짜의 달인 Y씨
주부이며 회사원인 Y씨(42)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행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3년 사이 15차례나 각종 경품에 당첨됐기 때문. 최근에만도 백화점의 한 경품행사에 응모, 120만 원이나 하는 양문형 냉장고를 탔고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70만 원짜리 제주도 왕복항공권을 경품으로 받기도 했다. 싼 것으로는 세제나 찜질방 이용권에서부터 콘도 이용권과 자동차용 냉장고까지 그녀가 경품에 응모, 받은 상품은 헤아리기 힘들다. '공짜의 달인'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한 Y씨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 행운을 가져온 포인트라고 귀띔했다.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품행사에 빠지지 않고 수없이 많이 응모를 한 덕분이지요. 인터넷이나 집에 배달된 전단지 등을 꼬밖꼬박 챙겨 매일 경품행사에 참여해요. 응모한 횟수가 많아지는 만큼 당첨 확률도 높아지는 셈이지요."
공짜로 경품을 많이 탄 그녀는 역설적이게 '공짜는 아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공짜로 상품을 타 좋겠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그만큼 노력을 많이 한 덕분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경품행사를 보고도 귀찮다며, 또는 당첨이 되겠느냐며 아예 응모를 하지 않더군요. 공짜로 경품을 받을 기회조차 팽개쳐버리는 것이지요." 앞으로 Y씨가 타고 싶은 상품은 자동차. "일부에서는 경품행사시 전화번호 등을 적어내야 해 개인정보 노출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아요. 열심히 노력해서 자동차도 꼭 받고 싶어요."
♠ "무료 내비게이션 탐내다 헛 돈만 날려"…공짜에 혹해 낭패 본 ㅈ씨
'공짜'를 미끼로 한 신종사기가 판을 치면서 '공짜'에 혹해 낭패를 당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올초 ㅈ 씨는 운전을 도와주는 네비게이션을 새로 바꿨다 낭패를 당했다. 내비게이션을 무료로 교체해 주는 대신 휴대전화 통화권을 구입하면 된다는 말에 현혹된 것. 새 내비게이션 장착이 끝나고 교체 대금 360만 원 대신 휴대전화 통화권을 구입했다. 그러나 400만 원어치 통화가 가능하다는 이 통화권은 20만 원 가량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공짜 내비게이션'을 앞세운 이 같은 수법에 전국에서 1천300여 명이 51억 여원의 피해를 봤다.
차량용 '블랙박스'를 공짜로 달아준다며 접근한 뒤 대금을 챙기는 신종 사기도 등장했다. 특별 홍보기간 동안 무료로 장착해 주고 있다고 소비자를 현혹, 일방적으로 장착한 뒤 뗄 수 없다며 계약을 강요하는 경우다.
휴대전화를 공짜로 준다고 해 놓고 잘못된 요금제를 적용하는가 하면 휴대전화로 게임을 다운로드 받을 경우 저렴하다고 해 놓고 전혀 예상치 못한 요금이 청구돼 '아연실색'하는 소비자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노인들에게 공짜로 물리치료를 해주며 노인들의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병원을 찾아와 진료받은 것처럼 허위 서류를 꾸며 보험금을 타낸 가짜 의사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왜 공짜를 바라나?
모르는 사람이 친절을 베풀면 경계를 하면서도 누군가 공짜로 물건을 주면 아무런 생각없이 받는 경향이 있다. 또 무엇인가가 공짜로 주어지는 데 대해 논리적이거나 합리적 판단을 하기보단 견물생심의 마음에다 노력없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감정 때문에 이성이 흐려지기도 한다.
공짜는 경제적 문제와 연관이 있지만 조금 더 깊게 보면 생존과 관련이 돼 있다. 인간이 생존을 하려면 음식이나 물건을 얻기 위해 찾아 다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짜는 그런 노력 없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 인간 심리엔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쉽게 취하려는 메커니즘이 자리잡고 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생존의 방편을 찾게 되고, 공짜는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다른 생각없이 취하려는 속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재호(계명대 심리학과 교수)
▶100% 공짜는 없다
공짜나 무료를 앞세운 상술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100%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샘플 상품을 공짜로 주는 경우도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기에 엄밀하게 따지면 공짜는 아닌 셈이다. ARS를 통한 경품행사도 통화료 명목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모아 몇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이기에, 일종의 복권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다 공짜는 아니라는 얘기다.
신문사 등에서 진행하는 퀴즈에 당첨됐을 경우를 공짜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길 수 있겠다. 전단지나 인터넷 사이트, 신문, 잡지 등에 있는 쿠폰이나 할인권을 자주 이용하는 것도 공짜의 비결. 외국의 경우엔 백만장자들도 자주 이용할 만큼 쿠폰이 활성화돼 있다. 궁상을 떤다고 여기지 말고 쿠폰이나 할인권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 공짜를 얻는 생활의 지혜다.
양순남(대구소비자연맹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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