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배 생각
안상학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니, 오늘 외박하냐?
-아뇨, 오늘은 집에서 잘 건데요.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야야, 어디 가노?
-예……. 바람 좀 쐬려고요.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다.
아배, 어매, 누부, 오라배 따위 호칭은 소뿔처럼 힘이 세다. 입술에 올리는 순간 금방 찌르르 신호가 온다. 그래서 시어로는 적당하지 않다. 미적거리를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시는 감정조절이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배 생각을 펼쳐놓고 있지만 그 행간에 숨은 진한 감정을 누군들 짐작하지 못하랴. 시를 읽으니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의 발고랑내가 금세 묻어난다. 그만큼 정황묘사가 잘 되어 있단 뜻. 그 효과는 사투리에서 비롯된다.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이 두 문장이 우리들 각자의 기억 속에 묻힌 아배를 불러온다.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무소식인 아배를 불러온다. 맥지로 나도 한번 불러본다. 아배요……. 금방 물기가 비친다.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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