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기행]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

백담사로 떠난 건 5월이었다. 오후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오색약수로 유명한 숙소까지 도착했을 때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밤새도록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 이슬 내리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에 잠을 뒤척여야 했다. 문학기행단은 아침 일찍 백담사로 향했다. 백담사로 가기 위해서는 한계령을 넘어야 한다. 오색에서부터 구불구불 오르기 시작한 고갯길은 한계령 정상에서 멀리 푸른 동해와 날카롭게 하늘을 찌르는 바위 봉우리의 전망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정상 가까운 곳에 있는 유명한 휴게소. 모두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면서 양희은의 '한계령'을 함께 불렀다. '저 산은 내게 오지마라 오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낮새도록 거기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고 싶다는 생각에 우린 오랫동안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3km의 계곡길을 걸어 닿은 곳이 백담사. 길게 뻗은 수심교(修心橋)를 건너자 금강문이 나오고 곧바로 오른편에 보이는 것이 만해기념관이었다. 만해기념관 앞에는 '나룻배와 행인'이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전문)

나는 '나룻배'이다. 나룻배는 강을 건너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도구이다. 물론 당신은 만해가 생각하는 님이다. 님은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님은 나를 '흙발'로 짓밟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님을 안고 아무리 급한 여울이라도 건넌다. 나룻배처럼 행인의 흙발도 견디면서, 행인이 없으면 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행인을 기다린다. 그러한 행위가 어떤 목적을 지니고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님은 강을 건너고 나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님을 기다리면서 낡아간다. 그것이 바로 만해의 마음이다. 시비 옆에는 만해의 흉상이 우뚝 서 있다. 흉상 밑에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만해의 말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만해기념관을 둘러본 일, 계곡에서 물장난한 일, 돌탑을 세웠던 일. 모두가 추억이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