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스타토크] 트로트계 사대천왕 설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김치와 고추장'에 배여있는 우리 고유의 진한 맛과 향을 잊고 살지 못한다. 템포가 빠른 서양음악 멜로디에 익숙해져있다 해도 4/4박자 트로트 리듬에는 온 국민이 흥겨워 어깨를 들썩인다. 트로트와 함께한 지 올해로 23년 된 설운도. '잃어버린 삼십년', '사랑의 트위스트', '다함께 차차차', '삼바의 여인', '누이', '춘자야' 등 그의 히트 곡은 '김치와 고추장'의 향과 맛을 넘어 된장 맛까지 곁들여지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계층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건 당연하다 싶다.

반바지에 슬리퍼, 헐렁한 남방 차림을 하고 한 손으로 의상 한 벌을 달랑 들고서는 KBS 신관 공개홀로 들어서는 그의 모습에서 '트로트계의 사대천왕'(태진아, 송대관, 현철, 설운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TV에 나와 '차차차', '사랑의 트위스트'를 간드러지게 부를 때처럼 화려하거나 요란스럽지 않다. 편의점으로 식료품을 구입하러온 동네아저씨 같다고 할까.

설운도는 1982년도 KBS 신인탄생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우승으로 데뷔하기 전까지 부산에서 줄곧 살아온 경상도 '싸나이'다. 특히 그를 이야기할 때는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에서 '잃어버린 30년' 노래를 부르던 장면을 빼고서는 얘기가 안 된다. 프로그램 테마송으로 수 없이 들어야 했던 그의 노래. 수 십 만 이산가족들이 보며 울고 또 울고, '잃어버린 30년'이란 노래를 들으면서 감정 복받쳐 안방이 눈물바다가 돼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결국 설운도는 이 곡으로 국민적 가수가 됐고, 그 해 KBS 가요대상 7대 가수상까지 오르는 영예를 안는다.

"5시간 만에 녹음해서 5시간 후에 첫 방송을 탔는데 동네 아지매 할 것 없이 들을수록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겠다고 난리가 났어요. 저도 이 노래 부르면서 얼매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그 후 계속해서 '나침판'으로 인기 덤에 오르고 '혼자이고 싶어요(1990)'로 MBC 10대 가수 상을 수상하고 '다함께 차차차', '여자 여자 여자'의 연속 히트 행진이 이어지면서 우연히 만들어진 스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런 그의 노래 실력은 어머니한테 물려받았다고 한다.

"울 어머니가 가수가 꿈이셨어요. 노래야 기가 막히게 잘 부르셨지. 어머니가 부산 해운대에서 장사를 하시면서 6남매를 혼자 다 키우셨는데 발등이 퍼렇게 퉁퉁 부어올라도 동생들을 손에 쥐고 업고 걷고 또 걸어가며 장사를 해서 우리를 다 키워주셨어. 본인 꿈은 포기하면서 말야." 미군부대에서 일하다가 약물중독으로 고생하면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묵묵히 지켜온 어머니가 그에게는 '부처님'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늘 어머니는 돈 많이 벌어다 주는 아들놈 보다는 밖에서 '설운도 괜찮은 놈이야'하는 소릴 듣고 싶어 하셨어. 이웃을 항상 잊지 말고 사회에 도움을 주는 '공인'이돼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씀하셨는데…." 순간, 어머님 얘기에 눈가에는 눈물에 고여 있다. "에고마, 분장 다시 해야겠네." 하며 얼굴을 고치는 그의 얼굴에서 털털한 사람냄새가 머물고 있다. 1995년에 '삼바의 여인'을 발표하고 나서 그의 어머니(곽순자 여사)는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했다. 그에게는 다른 어떤 상보다 가장 기쁜 상이였다고 회상한다.

분위기도 바꿀 겸 인기를 얻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방송생활 23년째 하고 있지만 가수의 인격은 노래로 말하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채우려하면 욕심대로 다 채울 수 가 없어요. 인기보다는 늘 빈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비워졌다 생각이 들면 다시 채워 넣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시청자들한테 다가서려고 노력하니까 많이들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성격도 긍정적이고 사교적인게 도움이 많이 되고요."

진정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그의 모습에서 억세지만 결코 억세지 않는 자잘치 시장 아주메의 넉넉한 가슴과, 경상도 사나이의 서민적인 향이 진하게 묻어났다. 인터뷰를 끝내고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 연신 머리를 만지며 매니저에게 "오늘 머리하고 스타일 영 아닌데…. 각도 잘 잡고 잘 찍어라잉."라고 주의를 준다. 그래서 또 한번 웃는다.

대경대학 연예매니지먼트과 교수

작성일: 2006년 0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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