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인도(人道)와 홍익사상

지난 1월에 자가용 승용차를 팔았으니 꽤 잘 버텨온 셈이다. 환경과 지구의 미래를 고려한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생각하기에 차이가 있겠지만 나름대로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운동이 필요했다. 교통카드 구입부터 충전, 대중교통 이용 코스 살피기 등, 처음엔 참 어설펐다.

게다가 중년의 남자가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차를 운전할 때보다 한 일이십 분 일찍 출발하면 되었다. 이제 대중교통이 익숙해지고 나니 다시 차를 사고 싶은 마음은 멀어져 간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여유가 늘어가더라는 것이다.

자동차 핸들을 잡을 때와 달리 생각할 기회가 많아지고 상념이 길어져 모든 것이 점점 다르게 보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보행자의 입장이 되고 나니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인도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출퇴근길 버스를 타기 위해 시장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차도·인도 구별 없는 길에 음식점·마켓과 시장이 이어져 있다. 포장마차와 과일 행상도 즐비한 길이다. 물건을 나르는 차와 장보러 오는 사람들의 차, 아파트로 출입하려는 차들이 앞뒤, 옆으로 뒤엉키는 길을 지나려면 보행자들은 짜증이 난다.

일방통행길로 만들든지, 인도라도 있으면 이런 불편함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보행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한구석 막다른 골목이라도 인도가 설치되어 있다. 도시 혈관의 끝까지 시스템을 완성시키려는 치열함이 엿보인다. 법으로 정했을 것이다. 아마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 장관을 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니 벌써 사오십 년은 되었다.

프랑스의 정신은 '자유 평등 박애'이다. 그네들은 이 알쏭달쏭한 박애정신을 실천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원칙을 정해놓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보다는 보행자 우선, 어른보다는 아이가 우선이 되는 법률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법이 만들어졌고, 특히 몇 년 전부터 크게 확대된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법의 실행이 문제일 것이다. 사람 위주, 약자 위주의 원칙은 법을 넘어 상식의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하지만, 이런 경제적·물질적 혜택과 관련해서도 행정은 법이 가장 기초를 두고 고려하는 이런 원칙을 먼저 깨우쳐야 한다. 프랑스에 박애정신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홍익사상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백찬욱 영남대 불문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