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현대 그룹 창업주 정주영이 조선업에 뛰어들 당시 문제는 돈이었다. 나라 안에는 그만한 돈이 없어 차관을 얻으러 영국으로 갔다. 조선소를 해 본 경험도 없는데다 아직 선주조차 구하지 못한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당연히 '노' 였다. 주머니에서 500원권 지폐를 꺼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시오.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전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소. 우리에겐 무한한 잠재력이 있소' 500원권에 새겨진 거북선이 그와 현대는 물론 한국의 신화 창조를 이뤄낸 것이다.
프랑스 루이 16세는 반대의 케이스다. 사치와 낭비로 기억된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프랑스 대혁명에서 타도의 대상이 됐다. 성난 민중이 파리를 뒤엎자 국외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재위시 만든 화폐에 그려진 자신의 초상화 때문에 그는 단두대에 목을 내밀게 됐다. 국경 마을에 사는 농부가 돈에 든 그림을 보고 그들의 왕을 알아 본 것이다.
유로화를 제외한 세계의 화폐에는 그 나라 상징 인물의 초상화가 들어있다. 독립과 건국의 지도자에서부터 역사를 이끈 이가 많다. 세계의 화폐로 군림하는 미국 달러화에서부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화폐에는 독립과 건국 지도자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한국은행이 설립된 이후 발행된 초기 우리 화폐에 그려졌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은 4'19 혁명 후 사라졌다.
정치 지도자만이 아니다. 남성과 기성사회에 맞선 수녀의 초상화도 있고 벨기에 돈에는 색소폰을 만든 이의 얼굴이 자리하며 덴마크 돈에서는 19세기를 풍미한 여배우의 얼굴을 만난다.
고액권의 화폐에 들어갈 인물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한국은행이 열 명의 후보를 발표하며 의견 수렴에 나서자 네티즌의 반응이 연예인 인기 투표를 방불케 한다. 여성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고 고구려 광개토대왕을 넣자는 의견도 뜨겁다. 인기 여자 가수를 넣어 우리 문화를 알리자는 주장도 있다. 누구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판단은 개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好不好(호불호)를 떠나 그들은 모두 당대를 치열하게 살아 간 우리의 영웅들이다. 점수를 매기는 일 자체가 미안한 분들이다. 게다가 그들은 스스로 내 얼굴을 넣어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화폐 초상화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는 눈을 멀게 하는 돈의 속성 때문일까.
서영관 북부본부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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