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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남한산성'의 뱃사공과 김상헌

소설에서 인상깊은 장면은 주전파 김상헌이 임금의 피신소식을 듣고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장면이다. 김상헌은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에 강가 마을에서 뱃사공을 만나 길 안내를 받는다. 뱃사공은 며칠 전 인조임금 일행이 도착했을 때 얼음이 두껍게 언 쪽을 골라 강을 건너도록 도왔던 인물이다. 강을 건너기 전에 김상헌은 사공에게 말한다.

- 청병(청나라 군대)이 곧 들이닥친다는 데, 너는 왜 강가에 있느냐?

- 갈 곳이 없고, 갈 수도 없기에….

- 여기서 부지할 수 있겠느냐?

- 얼음 낚시를 오래 해서 얼음길을 잘 아는 지라….

- 물고기를 잡아서 겨울을 나려느냐?

- 청병이 오면 얼음 위로 길을 잡아 강을 건네주고 곡식이라도 얻어볼까 해서….

김상헌은 사공의 말을 듣고 '이것이 백성인가, 이것이 백성인가….' 라고 말한다. 작가 김훈이 여기서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백성이다. 이것이 백성이다.' 였는지도 모른다. 적군을 안내해서라도 먹고 살 양식을 얻고 싶은 것이 백성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강을 건넌 후 김상헌은 다시 묻는다.

- 나는 남한산성으로 간다. 나를 따르겠느냐?

- 아니오. 빈집에 어린 딸이 있으니…. 소인은 살던 자리로 돌아가겠소이다.

김상헌은 돌아서는 사공의 목을 벤다. 김상헌과 사공은 각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제가 가고 싶은 길을 가고자 했다. 김상헌은 임금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가야했고, 사공은 어린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야 했다. 바로 이 장면을 두고 한 문화 평론가는 '후안무치'라며 이렇게 평가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아니 성공을 위해선. 치욕을 감내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는 이가 승리하는 이다, (중략)급격하게 보수화 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남한산성'은 적절한 문학적 상상력을 넘어 무도한 강자의 논리,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에 영합하고 있다.』

이 평론가의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독자가 소설 '남한산성'의 사공이었다면 어느 쪽을 택했을까? 남한산성으로 갈 것인가? 어린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 청나라 군대가 오면 얼음길을 안내하고 삶을 구걸할 것인가?

만약 (소설과 달리) 김상헌이 집으로 돌아가는 사공의 목을 즉시 베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면 어땠을까? (물론 사공은 조리 있는 말솜씨나 지식이 없었다. 사공이 어느 정도 상황을 아는 인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 너는 조선의 백성이다. 네 놈이 임금을 버릴 생각이냐? 감히 네 놈이 청나라 군대에게 길을 안내하고 쌀을 구걸할 생각이냐? 후안무치한 놈!

- 나는 임금의 신하가 아니오. 나는 내 어린 딸의 아비일 뿐이요.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임금과 나라가 아니라 내 딸이오.

- 그 입 닥치지 못하겠느냐? 네 놈이 지금까지 누구의 성은을 입고 누구의 땅에서 살았더냐?

- 나는 성은을 입은 바 없소.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노를 저었소. 나는 쉬지 않고 일했소. 겨울에도 여름에도 쉬지 않았소. 나는 임금처럼 비단 옷을 입어본 일도, 당신처럼 기름진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소.

- 백성된 자가 할 말이더냐?

- 왜적이 쳐들어왔을 때 선조 임금은 압록강까지 도망가 명나라로 건너갈 궁리만 했소.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오니 인조 임금은 산성에 숨어 살 궁리를 하고 있소. 왕자와 신하들은 강화도로 도망쳤다고 들었소. 나라의 녹을 먹는 군대는 모두 어디로 간 것이오? 나라를 지키라고 훈련받은 군대는 어디로 달아나고 호미와 괭이밖에 모르는 농사꾼이 싸워야 한다는 말이오? 그것은 나랏님이 할 도리요?

- 나라에 위기가 닥쳤는데, 얄팍한 말을 하는 네가 그러고도 백성이냐?

- 내 나이 오십이오. 길지 않은 생애에 크고 작은 난리를 3번이나 겪었소. 한 평생에 크고 작은 난리를 3번이나 겪게 만든 나랏님은 나랏님이오?

- 가증스럽구나. 네놈이 나라를 잃으면 어디에 살 것이냐? 청나라에 빌붙어 살 것이냐? 네가 어디에서 백성 대접을 받겠느냐?

- 이 나라는 '임금의 나라' '사대부의 나라'요. 나는 대접받은 적이 없소. 나는 당신들이 멸시하던 천민 뱃사공이요. 내게는 지켜야 할 나라가 없소. 내게는 조선과 청나라를 구별할 이유 또한 없소.

물론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화다. 그러나 위의 문화평론가처럼 뱃사공을 '후안무치'로 몰아세우려면 뱃사공이 '사대부 김상헌의 나라'를 위해 죽어야 할 이유를 먼저 밝혀야 하지 않을까?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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