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소설과 영화 어떻게 다를까?
"누구더라. 왜 있잖아, 그 사람…. 배우야, 외국 배우, 거기 나왔는데."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은 일본작가 오기와라 히로시가 쓴 '내일의 기억'이다. 한창 일할 중년의 남자 사에키는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내일의 기억'은 알츠하이머로 인해 겪는 이야기를 세밀하게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거의 수정 없이 영화화 돼 일본을 울렸다.
영화에는 눈시울이 불거질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자신이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에게 젊은 의사는 어렵게 알츠하이머 진단을 내린다. 주인공은 그 의사를 향해 '너는 몇 살이야? 의사생활 몇 년 했냐? 남의 병이라고 쉽게 말하지?' '병을 발견해서 기쁘지?'라고 쏘아댄다. 비난을 받은 의사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부디 포기하지 마십시오.'라고 설득하는 장면은 눈물겹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에키를 떠나보내는 동료와 후배들의 이별장면도 눈물난다. 이제는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편을 보면서, '당신 잘못이 아니야, 당신 잘못이 아니야, 병이 그러는 거야' 라고 남편을 위로하는 아내를 보면서 관객은 눈물을 감추기 어렵다.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역의 여배우가 보여주는 표정연기는 문학이 도저히 표현하기 힘든 장면이다.
영화의 감동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적절하고 아름다운 효과음에서 기인한다. 배우의 연기와 효과음, 생생한 배경이 없다는 점은 소설의 가장 큰 약점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영화가 표현하기 힘든 장면을 드러낸다. 기억력이 점차 감퇴하는 주인공은 자주 다니던 거리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회사에 전화를 걸고, 휴대폰을 든 채 사무실에서 알려주는 방향을 따라 약속장소로 달려간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의 긴장을 부여하기 위해 자동차 경적소리와 마찰음 거친 숨소리 등 효과음 등 갖가지 장치를 등장시킨다. 그럼에도 원작을 읽을 때 느꼈던 막막한 절망과 긴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영화와 비교하면 이렇다할 '무기'가 없는 소설이 영화보다 더 생생하게 와 닿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독자의 상상력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의 상상력은 영화가 제공하는 어떤 효과음이나 뛰어난 연기보다 강력한 무기다.
영화와 문학의 가장 큰 차이는 '정면과 이면'이다. 영화는 직접 보여주기 때문에 주로 정면에 집중한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은 영화에 비해 정면에 약하지만 이면에 강하다. (사실 영화가 제공하는 이면은 문학에 비하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츠하이머는 인간을 파괴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질병이 진행하는 동안 환자는 갖가지 심리변화를 겪는다.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좇게 할 뿐만 아니라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한 중년 남자가 몰락해 가는 과정을 세세하게 담아낼 뿐이다.
『흔히 중년이 지난 사람의 삶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규정되고, 존재한다. 기억을 잃는 다는 것은 과거의 관계를 잃는 것이다. 다른 모든 치명적인 질병과 마찬가지로 알츠하이머는 미래와 더불어 생명을 파괴한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는 이에 더해 과거를, 관계를, 사랑을 모조리 파괴하려고 든다. 미래가 없는 내가 아니라, 과거가 없는 나를 무슨 수로 증명할 것인가. 알츠하이머가 다른 질병보다 두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알츠하이머의 무서움과 더불어 인생에 대한 지극한 긍정을 담고 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나는 나를 잊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나를 기억하는 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버리지 않는 한, 알츠하이머가 내 과거를 파괴할 수는 없다. 내가 세상에 존재했음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알츠하이머가 아니라, 나와 함께 존재했던 사람들의 망각이다. 그들이 나를 잊지 않는 한 나는 존재한다.』
위 『』표기 속의 글은 원작을 읽는 동안 느낀 감상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런 감정을 느낄 틈이 없었다. 영상의 속도에 좇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배우의 뛰어난 연기와 적절한 효과음, 화려한 배경은 영화의 최대 장점이지만 또한 단점이기도 하다. 관객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단 극장에 들어선 순간 영화제작자들이 차린 똑같은 밥상을 같은 속도로 들이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소설가 복거일씨의 영화와 문학에 대한 평가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설 읽기를 꺼린다. 어렵게 읽어야하고 문자를 영상으로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영화를 시시하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제공하는 장면이 머릿속 상상력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파이란'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관객들이 많다. 이 영화는 아사다 지로의 원작소설 '편지'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단언컨대 영화 '파이란'은 원작의 감동에 미치지 못했다.
영화 '파이란'의 '눈물-(감동이라고 해두자)'은 영화와 문학의 눈물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배우 최민식의 눈물연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배우가 직접 보여주는 데서 기인한 '눈물의 전염' 혹은 '눈물의 강요'인 셈이다. 이 눈물은 관찰자로서 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작 소설 '편지'가 주는 눈물은 주인공이 자신의 '서류상 아내'가 써놓은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이다. 독자는 그 편지를 썼던 여인의 당시 심리와 마주서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눈물 한 방울없이 또박또박 써내려간 편지인데, 주인공을 따라 그 편지를 읽다보면 눈물이 저절로 난다. 눈물의 전염이 아니라 자신이 등장인물과 동일시되어 흘리는 눈물인 셈이다.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화된 '향수'는 어떤가? 소설 '향수'를 읽노라면 전율을 떨치기 어렵지만 영화 '향수'에서는 전율을 느끼기 어렵다. 소설 향수에는 '향수냄새'가 코밑에 와 닿지만 영화에서 '코밑을 자극하는 향수'를 느끼기 어렵다.
영화와 문학은 장르가 다른 만큼 재미와 영향 역시 다르다. 서로 잘 나타낼 수 있는 분야도 다르다. 그러나 영화의 재미만 알고 문학의 재미를 모른다면 어쩐지 손해보는 것 같다. 물론 문학을 통해 감동을 느끼려면 다소간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조금 익숙해지면 그 재미는 기대이상일 것이다. 재미를 떠나 일상에서 문학을 멀리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복거일씨는 기술이 장르의 우위를 결정하는 만큼 영화는 더욱 발전할 것이고 문학은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상상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면서, 창조적 상상력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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