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그때로 돌아가 김밥 든 채 한니발 다시 봤으면…

새벽에 TV를 켜니 케이블 방송에서 '한니발'을 한다. 안토니 홉킨스의 냉소적인 얼굴 표정을 나는 수년 전에 조조할인을 끊고 입장한 영화관에서 친구들과 김밥을 깨물며 봤었다. 그때의 기억이 바람을 일으키며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십대 초반이었던 그때 카페에서 함께 담소를 나누던 나와 친구들은 차시간이 늦은 관계로 아쉬움을 접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에 만난 우리들은 셔터란 셔터는 모조리 내려지고 취객의 발자국처럼 흩어져 있는 광고지가 굴러다니는 시내거리를 걸었다.

처음부터 영화를 보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시간에 문을 여는 곳이라고는 고작 24시간 편의점과 김밥 전문점 그리고 영화관이 전부였다. 김밥과 음료수를 사 영화티켓을 끊었다. 지금의 조조보다 그 당시의 조조는 한두 시간 정도 빨랐다. 그 넓은 영화상영관에는 달랑 우리 네 명뿐이었다. 스크린이 광고를 끌어올릴 때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종류가 다른 각각의 김밥들을 서로의 하얀 일회용 도시락에 놓아주면서 키득거리며 떠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영관에는 우리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으니까.(빈 좌석들을 상대로 예의를 차릴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고 우리는 그 알록달록 색색의 김밥들에 그 누구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한니발'이라는 영화는 무언가를 먹으면서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으며, 텅 빈 영화관에서 김밥을 씹으며 볼 수 있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인 비행기 안에서 동양인 아이에게 요리한 사람의 뇌를 포크로 집어 주는 한니발의 친절함에 우리 모두는 경악했다.

영화가 끝나고 가까스로 밖으로 나온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장실 옆에 자리 잡은 휴지통에 남겨진 김밥을 버렸다.

그때의 우리는 젊음이라는 스펀지로 그 어떤 것이라도 흡수해버릴 수 있었으니까. 그 중 한 명은 본래의 나이보다 더 늙어보이는 관계로 지금은 나이 많은 아저씨가 되어 쇠고기, 돼지고기와 함께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예뻤던 여자친구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들 중 가장 어렸던 남자 후배는 인천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출처도 모른 채 야채김밥을 들고 자리에 앉은 여자였던 나는 매주 도토리들을 향해 교육하고 있는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는 노처녀가 되어 있다. 다시 시간에 몸을 싣고 그때로 돌아가 김밥을 손에 든 채 한니발을 보고 싶어진다.

성혜진(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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