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을 만난 예술] ⑥류성하 '채화정의 아침'

가버린 날들의 잔영

안동 하회마을로 가는 길목인 풍산읍 초입에 '채화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주위를 감싼 작은 연못이 있다. 물빛의 영롱함과 풀섶 사이에 점점이 박힌 작은 햇살에 이끌려 화구를 놓고 앉았다. 아침 햇살의 투명함이 아름다워 공허하기까지 하다.

나의 관향(貫鄕)은 풍산(하회)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많은 풍경을 보면서도 왠지 그 근처를 지나면 조상들이 밟고 지났을 발자취를 느끼며 괜스레 설레곤 한다. 흰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원족(遠足) 가시던 할아버지, 그 뒤를 내외(內外)하며 멀찌감치 떨어져 뒤따르시던 할머니.

그 모습에서 조금씩 공통점이 묻어나던 수많은 종반들. 문중의 대소사에 우르르 떼지어 왁자하게 몰려가시던 집안 어른들…. 그것은 이 작은 누각 아래 연못의 물빛으로 내게 투영되어 온다.

모든 것은 그리움이다. 그림 그리는 행위가 결국은 그리움을 그리는 것이 아니던가?

이 아침, 채화정이라는 작은 연못의 물빛에서 오늘 익명의 시대에 점점 잊혀 가는 우리네 옛이야기들의 쓸쓸함과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비쳐오는 가버린 날들의 잔영을 본다.

글·그림 류성하(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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