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D-100일 작전…수능은 전쟁?

앞으로 석 달 뒤에는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11월 15일이 시험일이니 정확히 93일 남았다. 딱히 수험생이나 그 가족이 아니라고 해도 일주일 전에는 'D-100일'이라는 말을 신문이나 TV에서 한 번쯤 듣고는 '수험생들 더운데 고생하겠군.'하며 혀를 찼을 것이다.

'D-100일'은 이제 수험생 누구에게나 익숙한 통과의례가 되고, 한편으로는 천박한 상술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아무 근거도 없이 강조된 건 아니다. 수험생들에게 이 시점은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의 한가운데에 놓이면서 피로에 젖고 공부의 효율이 떨어지는 때다. 남은 석 달여의 기간은 그 동안의 공부를 정리해 자신의 장·단점을 살펴 보완하는 데 길지도 짧지도 않게 적절하다. 잠시 공부에 소홀했다고 해도 마음을 다잡아 다시 준비하면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는 'D-100일'이라는 용어에 담긴 철학이다. 엄밀히 말해 'D-day'는 군사 용어다. 군사작전상의 공격예정일로, 공격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며 공격 후의 상황을 감안한 사후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이다. 'D-day'가 결정되면 모든 시간은 여기에 맞춰진다. 공격일의 전후 숫자만 있을 뿐 달력상의 오늘이 며칠이든, 개인적으로 기념해야 할 날이 있든 없든 모두가 무의미해진다.

패자부활전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 입시제도 하에서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이만큼 맞아떨어지는 용어도 찾기 힘들다고 할 수 있겠다. 입시기관들이나 신문 방송이 이때쯤 수능 마무리 전략, D-100일 작전 따위의 전투적 표현을 남발하는 것도 전쟁통이 되어버린 우리 입시 현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공부는 물론 세상살이 자체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인 바에야 어려서부터 경쟁과 승패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게 맞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같은 전투적인 상황 설정에 담긴 부작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은 날을 각인시켜 긴장감을 키우고 학습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발상은 '섬세한 지성'이 아니라 '미련한 강심장'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승자독식과 승리지상주의를 강조함으로써 학습 동기에 날을 세우려는 의도는 승자의 아량과 패자의 승복이라는 가치관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 이래서는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다.

곰곰이 살펴보면 수험생보다 더 걱정되는 건 주변의 사람들이다. 수험생의 성공을 원하는 부모의 욕심이나 교사의 바람이 나쁜 건 아니지만 이른바 전투 모드에 들어가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요즘의 수능시험은 실력을 키우는 것보다 실수를 줄이는 게 더 중요하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스스로 자신감을 가져야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압박과 강요보다는 칭찬과 격려가 보약이다. 전투적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 올바른 자녀교육의 출발점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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