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 초등학생치고 해리포터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얼마전 판매에 들어간 해리포터 최종편은 일반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 연일 수백, 수천 권씩 팔린다고 한다. 해리포터 원서 읽기가 영어를 공부하는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일 정도라니 그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을만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과연 이런 이야기가 없을까. 서양 이야기에 나오는 마법보다 더 신기하고 재미난 이야기가 우리나라 옛 이야기에도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전우치전'이다. 전우치전에는 하늘을 나는 마법 양탄자나 요술 지팡이가 우스울 정도로 신기한 도술이 많이 등장한다. 탐관오리를 벌하고 약한 자를 돕는 줄거리는 서양 판타지보다 더 뚜렷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렇게 놀라운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있는데 아이들은 어째서 서양 판타지에만 열광하는 것일까. 길게 생각지 않아도 답은 나온다. 옛글이 어려워서 아이들이 읽기에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옛글에는 한자 말과 쉽게 이해하기 힘든 고사성어, 고어 표현이 많이 섞여 있어 읽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 출판된 '전우치전'(김진섭 글/깊은책속옹달샘 펴냄)은 이런 고전에 대한 불만을 적잖이 해소시켜 줄 것 같다. 환곡(還穀), 동헌(東軒), 제수(除授) 같은 어려운 단어는 어린 독자들을 위해 여백에 설명을 달았다. 동양화풍의 삽화가 눈길을 끌 뿐 아니라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듯한 문체도 자상하게 느껴진다.
전우치전은 조선 중종때부터 명종때까지 활약했던 실제 인물 전우치의 자취를 소설로 발전시킨 것이다. 가난한 백성들 편에 선 주인공 전우치가 도술을 무기로 삼아 정치권력과 부패한 사회에 맞선다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임금을 속이고 황금 들보를 판 돈으로 백성들에게 곡식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전우치의 모습에는 '나라는 백성을 뿌리로 삼아야 한다.'는 백성 중심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책은 이처럼 전우치가 나쁜 탐관오리와 양반들을 벌주기 위해 벌이는 통쾌한 에피소드들로 엮어져 있다. 호리병 속으로 몸을 숨기고 그림속으로 사라지는 도술이나 해동청 보라매, 검독수리로 변하는 장면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전우치에 대한 입체적인 인물묘사다. 그가 승부욕 때문에 화담 서경덕에게 도술 내기를 걸었다가 여지없이 지고 마는 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도인상과는 거리가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화담에게 무릎꿇고 배움을 청하는 마지막 모습은 그래서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 생각해보기
▶전우치는 도술을 부려 황금 대들보를 구름에 실어가고 호랑이나 용으로 변신하거나 나귀를 타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전우치는 이런 도술을 이용해 이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 바꾸고 싶어했을까.
▶전우치전은 43종의 필사본이 전해 내려올 만큼 줄거리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전우치를 아예 악인으로 묘사한 책도 있다. 동일한 전우치를 소재로 했는데도 이처럼 다양한 전우치 이야기가 태어나게 된 이유는 뭘까.
▶전우치전은 욕심 많은 양반, 관리를 벌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돕는다는 점에서 홍길동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측면도 많다. 전우치전과 홍길동전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고 비슷한 주제를 가진 다른 고전을 찾아보자.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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