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지식 전달자가 아닌 '멘토'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 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고은 '머슴 대길이'

고은 시인은 시집 '만인보'를 통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여 연작시를 발표하였다. '대길이'는 비록 머슴이었지만, 어린 고은의 삶에 영향을 준 '불빛같은' 존재의 '멘토'였다. 멘토란 '인생을 다잡아 이끌어주는 분'으로, 어원은 호머의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와 그의 친구 '멘토'에서 유래한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위해 떠나면서 자신의 친구 '멘토'에게 아들을 부탁했고, 그는 최선을 다해 아버지로서 선생으로서 조언자로서 텔레마코스를 도왔다. 이후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사람을 '멘토'라 부르게 되었다.

인생은 등반과 같다. 대부분은 아무 장비 없이 갑자기 높은 산을 향해 달려간다. 갑작스런 악천후를 만나거나, 낭떠러지를 만나거나, 식량이 떨어지거나, 또 독충에게 물리거나 등등, 뒤늦게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자신을 깨닫고 후회한다.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등산 경험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안내자는 어떤 길이 안전한지, 등반장비를 제대로 갖췄는지 점검해 준다. 또 장비 사용법 및 기후변화를 알아차리는 법, 등산로를 파악하는 법 등 등반에 필요한 여러 지혜를 일러준다.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육체와 정신에 장애가 있는 청소년이나, 직접 생계를 책임져야 하거나 학업이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이나, 남부러울 것이 없는 환경이지만 힘겹게 사춘기를 보내는 청소년에게 '멘토'의 존재는 작고 사소한 경험일지라도 이를 통해 커다란 결실을 맺어내기도 한다.

미국의 하버드대학에는 소수인종 우대 정책으로 인해 매년 3%의 흑인들이 입학하는데, 이러한 흑인들 중에는 슬럼가 출신들이 꼭 있다. 마약 중독자의 자녀, 미혼모 자녀, 부모의 이혼 같은 가정파탄과 궁핍한 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룬 학생들의 공통점은 모두 '힘든 삶을 다잡아 이끌어주는 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멘토'이고 싶다. 그러나 아무나 멘토가 될 수는 없다. 훌륭한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때로는 어머니처럼 자상하여야 하고, 때로는 친구처럼 놀기도 하고, 때로는 형처럼 선배처럼 다정다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선생님으로서 엄하여야 할 것이다. 학교에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잘 하고 있지만,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학생들이 많이 있다. 그 짐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멘토'가 되고자 한다.

손삼호(포항제철고 교사, sam35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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