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도광의 作 '그리운 남풍 2'

그리운 남풍 2

도광의

잔치가 끝나도 큰방에 둘러앉아 밤늦도록 놀았다. 잠잘 데가 모자라 마루에서 베개 없이 서로 머리 거꾸로 박고 자면서도 소고기국에 이밥 말아 먹는 게 좋았다

"언니야, 엊저녁 남의 입에 구린내 나는 발 대고 잤는 거 알기나 아나?"

"야가 뭐라카노, 니 코 고는 소리 땜에 한숨도 못 잤데이"

주고받는 말이 소쿠리에 쓸어담을 수 없는 헌것이 돼버린 지금, 등 너머 흙담집 등잔마다 정담은 밤비에 젖어가고 있었다

멀리 시집가서 사는 누님을 하룻밤이라도 더 자고 가라고 이 방 저 방 따라다니며 붙잡던 솔잎 냄새 나는 인정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해산한 딸 구안(苟安)하고 돌아오는 동리 앞 냇가에 눈물 흔적 말끔히 씻고 가없이 펼쳐진 하늘 쳐다보고는 마음 안에 갇힌 막막한 울음을 걷어내고 마을 안으로 발걸음 옮기는 뼈아픈 가난의 설움을 저승의 번답(反畓)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것인가

여기 또 하나의 '여우난곬족(族)' 기록이 있다. '여우난곬족'이란 1930년대 중반 '부족 방언'으로 한국시의 한 경지를 열어나간 백석의 작품. 평안도와 경상도의 거리만큼 두 시의 주제는 다르지만, 살갑고 도타운 정을, 솔잎 냄새 나는 인정을 실감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여우가 난 골에 여우가 사라졌듯이 오늘날 가족들의 마음에 가족이 사라져버렸다. 훈훈하고 푸근한 가족간의 유대감, 이제는 정녕 그리운 남풍이 되어버렸는가.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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