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포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찬한담(晩餐閑談)

음! 남조선 인민들의 반응은 어때? 퇴직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을 불러 밥 한 끼 하자고 했는데, 뭘 그리 호들갑 떠는지! 빈농의 아들과 태어나 불철주야 노력해서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니 우리 인민들도 본받아야 할 게야. 임기 동안 우리 북조선 인민들에게 헌신한 공로에도 보답해야지.

그건 그렇고, 남쪽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대선에 이용한다고 또 난리 났겠구먼. 남조선 정치인들은 세상도 외교도 몰라. 미국 민주당 대권후보 버락 오바마를 봐. 당선되면 나도 만나고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도 만난다고 하잖아. 교제와 교섭을 구분해야지. 잔치는 잔치대로 하고 국사는 국사대로 진행하면 좋을 텐데….

우리 공화국처럼 미국을 상대로 목숨 건 벼랑끝 외교나 버티기를 할 필요도 없잖아. 돈 번 사람, 길 닦은 사람 따로 있다는 것을 남조선 인민들도 다 아는 일인데 새삼 제 잘나고 제 덕인 양 왜들 그러는지 몰라, 오십보백보지.

아 참, 중국은 우리가 보낸 선물에 만족하던가? 북경올림픽 D-365일 기념식은 잘 끝났고? 중국 사람들은 내년 북경올림픽을 '순조롭게 돈 버는 것'으로 규정한 모양이야. 돈독이 오른 게지. 올림픽장사 제대로 하려면 분란이 없어야 할 테니 형제국인 우리가 도와야지. 다행히 한국정부가 8월 8일 기념식 날짜에 맞춰 정상회담을 한다고 발표했으니까 중국도 우리 선물보따리에 안심하고 만족했을 게야.

미국 애들은 뭐라고들 해? 이미 입맞춘 내용이니 좋아하는 척할 게야. 남조선 인민들에게서 보호비 악착같이 뜯었는데 막상 탈레반 납치 사건에서는 속수무책이었지. 체면 많이 구겨졌는데 내심 좋아하겠군. 6·25전쟁 종결, 작통권 환수, FTA로 다시 옭아매려하겠지만 어림없는 수작이지.

어쨌든 미국의 목표는 중국시장 진출이니까 우리는 길 내주고 통행료 받으면 되는 게야. 전쟁할 때 길 내어주면 유탄에 맞을 위험이 있지만 장삿길 내주는 거야 사고 나더라도 돈벼락 맞을 게 아닌가.

그런데 최근 재미난 소문이 들리던데? 미국이 우리 조선과 중국을 잡으려던 인권카드로 일본을 잡은 모양이야. 인권을 빌미로 북경올림픽을 보이콧하겠다고 공갈쳤는데 그 불똥이 엉뚱하게 위안부로 튄 것 같아. 미 의회의 위안부결의안 통과로 아시아 연대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겠군.

그렇지 않아도 일본 퇴직자들이 줄줄이 중국으로 건너가고, 남조선도 비자 없이 일본을 오간다는데, 이번 정상회담 성사로 동북아 협력체 결성이 탄력을 받겠구먼. 일본이 성의를 충분히 보이면 '조·일 수교협정'도 조인하지 뭐. 겉으로 놀란 체해도 제2차 세계대전의 면죄부도 얻고 확실한 안보보험에도 가입하는 일석이조의 효과에 얼씨구나 하겠군.

우리 공화국 인민들에게도 이 사정을 알리고, 정상회담 합의문 전문을 설명하고 암기하도록 지시하라우. 특히 다음의 몇 가지 내용에 꼭 밑줄을 치게 하라우. 첫째,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합의' 부분. 정식 국가명칭 두 개가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은 양국이 서로 독립적인 개별국가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네. 즉 상호 전쟁이나 적 개념에서 벗어났다는 말이지.

둘째,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부분. 노 대통령을 평양에 오라 한 것은 우리 공화국이 현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내가 남조선 집안잔치에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뜻이야. 누가 남조선 대통령이 되든지 우리 공화국은 승자하고만 거래하자우.

셋째, '높은 관계-한반도평화-공동번영-조국통일' 부분. 이것이 바로 양측이 합의한 한반도 통일방안이야. 신뢰구축 조치 등 관계 정상화가 우선되고, 정전상황을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양측 발전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조건을 성숙시켜 통일하자는 전략인 게지.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 역시 이들 과정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조급히 서두를 필요가 없다우.

넷째, '상부의 뜻을 받들어' 부분. 분명히 말하지만 여기서 상부는 나와 노 대통령을 지칭하고, 상부에서 지시했다고 분명하게 적은 것은 다들 한반도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는 의사를 세계만방에 밝힌 거라우. 어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남조선에서 진상한 산해진미가 가득하구먼. 모두들 꼭꼭 씹어 천천히 들라우.

※ 남북정상회담의 의미와 전망을 북한의 입장에서 살펴본 내용임.

이정태(경북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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