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성적 반영 비율을 둘러싸고 몇 달을 끌던 교육부와 대학 사이의 갈등이 얼마 전 가까스로 봉합됐다. 온 나라가 시끄러운 논란이었지만 뭔가 알맹이가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교 교육이 대학입시에 종속된 우리 현실에서는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몇 %로 하건, 설령 정권이 바뀌어 다시 새로운 제도를 내놓건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이다.
정작 답답한 건 우리 중등 교육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대학입시 제도만 놓고 보면 교육학에서 말하는 '균형 발달'과 '전문 능력'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붙잡고 있는지 의문이다. 학교 교육과정을 어떻게 짜고 어느 정도 폭과 깊이로 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균형 발달을 강조하는 쪽은 다양한 영역에서 학습 경험을 쌓아야 조화로운 발달이 가능하다고 보는 반면 전문 능력을 강조하는 쪽은 학습자의 특성에 맞는 개별화 과정이나 개성의 신장이 자아실현에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최근의 교육과정은 전문 능력 심화 쪽에 방점이 찍힌 듯하다. 교육계에서 흔히 인용되는 동물학교 이야기를 보자.
'동물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달리기와 날기, 기어오르기와 헤엄치기 등 네 가지 능력이 모든 동물에게 필요한 기초 능력이라며 모두가 똑같은 과목을 이수하도록 했다. 어떻게 됐을까. 오리는 수영을 잘 했지만 달리기가 형편없어 방과 후에 특별 지도를 받아야 했다. 수영 수업도 빠진 채 달리기에 매달리다 보니 발바닥이 모두 닳아 수영도 중간으로 밀리고 말았다. 달리기 일등인 토끼는 수영 노이로제에 걸려 자퇴했으며 기어오르기와 날기를 잘 하는 다람쥐와 독수리 역시 문제아가 되고 말았다. 그럼 일등은? 무엇 하나 제대로 못 하지만 약간씩은 다 할 줄 아는 뱀장어가 우등생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학습자 개인의 적성과 소질을 강조하며 대학입학 전형 요소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현행 교육제도는 모든 것을 골고루 잘 하기보다 한 가지 분야에서라도 뛰어난 능력을 갖추기를 바란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동물학교 우화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 와서 보면 아무 필요도 없는 것 같은 과학이며 사회 과목을 빠짐없이 공부해야 했던 학부모 세대라면 공감하는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 교육 현실은 이도저도 아니다. 고교 인문계열 학생들의 경우 미분 적분을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과학 과목은 공부할 필요도 없다. 원하는 대학 전공과 관련된 사회 과목 몇 개를 선택해서 들으면 된다. 그런데 이 과목들의 공부도 깊이 있게 할 이유가 없다. 수능시험을 쉽게 출제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수학 맹탕인 경제·경영학도가 속출하고, 사회는 깜깜한 채 과학의 기초 이론조차 더듬는 이공학도가 양산되는 것이다.
여기서 균형 발달과 전문 능력 가운데 어느 쪽이 중요하냐고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교육부와 대학, 정치권과 교육계가 시급히 논의해야 할 화두는 미래 한국의 경쟁력을 좌우할 인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란 얘기다. 수험생, 학부모를 혹하게 만드는 실질반영비율 따위에 빠져 있기엔 세상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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