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 60억투자에 기립표결

주유소 사업에 6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경주농협의 의사결정 방식에 논란이 일고 있다.

경주농협은 13일 임시대의원회를 열어 청사 바로 옆 부지 4천㎡를 구입, 주유소와 주차장을 짓겠다는 안을 상정한 후 대의원들의 의결을 구했다. 손선익 경주농협장은 "5년 후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농협의 장래를 생각해 현명한 판단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활기찬 토론이 이어졌다. 대의원들은 이 안건을 통과시켜야 하는 이유부터 돈을 빌려서 하는 무리한 사업은 지양돼야 한다는 의견까지 각자 생각을 서슴없이 피력했다. 열띤 토론은 경주농협 대의원들의 조합 사랑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가부를 판단하는 방법은 참으로 의아스러웠다.

손 농협장이 기립표결 방안을 제안한 것. 순간 장내에는 찬성과 반대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특히 반대 대의원들은 "조합에서 돈 빌리고, 지도를 받아야 할 농민들이 조합장과 조합이사, 직원들이 바라보는 공개 장소에서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면서 무기명 투표를 요구했다. 그러나 손 조합장은 "다수가 '일어서는 것'에 찬성한다."면서 밀어붙였다.

"우선 찬성하는 분부터 일어나 주세요." 사회자의 발언에 대의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자 앉아 있던 대의원들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대의원은 "처음부터 찬성은 했지만 이건 아니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른 한 대의원은 "공개재판하는 것도 아니고…."라며 혀를 찼다.

조합 직원이 앞줄에서부터 찬성 인원을 체크하자 대의원들은 순간 너도나도 자리에서 일어서기 바빴다. 심지어 토론에서 반대했던 대의원이 일어서는 광경까지 벌어졌다. 결과는 98명 참석에 88명 찬성.

이날 결정에 절차상 하자는 없다. 그러나 조합원 4천여 명에 수신 3천400여억 원, 도내 농협 중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의 농협이라면 의사 결정 절차도 반대진영과 타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이날 임시총회에 대해 조합 관계자는 "아주 매끄럽게 처리됐다."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현장에서 보기엔 참으로 어이없는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는데도 말이다.

경주·최윤채기자 cy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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