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에 납치된 한국 여성 2명이 13일 밤 이슬람권의 적십자사인 적신월사(赤新月社)에 인계된 후 석방됐다고 한다. 적신월사는 우리에게 생소하게 들리지만 이슬람권에서는 각종 재해 구호와 사회복지 등 인도적 사업을 펼치는 신뢰받는 비정부기구다. 무슬림 왕권과 형제애를 상징하는 '붉은 초승달' 즉 적신월이 들어간 표장을 쓰기 때문에 적신월사(Red Crescent Societies)로 불리고 있다.
적십자(Red Cross)는 앙리 뒤낭이 1863년 적십자사를 창설하면서 모국인 스위스 국기에서 표식을 차용해 썼다. 따라서 적십자에는 별다른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십자군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이슬람권의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때문에 적십자를 대체한 것이 적신월이다. 적신월은 1877년 러시아-오스만 투르크(현재의 터키) 전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南進(남진) 정책을 내건 러시아의 알렉산더 2세가 당시 발칸반도 주변의 슬라브 민족을 탄압한 오스만 투르크를 공격했는데 당시 '오스만 부상자 구호협의회'가 적신월을 처음 사용한 것이다.
이후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적신월을 비기독교 국가의 표장으로 수용했고, 1차 세계대전 후 전쟁과 포로에 대한 국제 규칙을 정한 제네바 협정(1929년)에서도 이를 국제적으로 공인해 현재 33개국이 적신월을 쓰고 있다. 초승달 문양은 3세기부터 7세기 중반까지 중동의 패권을 쥔 사산왕조 페르시아(현재의 이란)에서 기원한다. 사산왕조의 왕권을 의미한 초승달은 현재 많은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또 예언자 마호메트가 깨달음을 얻고 하늘을 보니 초승달과 별이 떠있어 무슬림을 상징하는 문양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스라엘은 다윗의 붉은 별을 상징하는 적수정 표장을 쓰고 있는데 같은 성격의 기구가 세 가지 표장을 분리해 쓰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면에 복잡다단한 의미와 뿌리 깊은 차별성이 담겨 있는 기호의 힘을 실감하게 하는 사례다. 세계화의 추세에도 인간의 의식을 좌우하는 기호와 상징체계(심벌)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적십자가 됐든 적신월이 됐든 피랍 한국인 석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비록 표장은 다르지만 지향하는 정신은 같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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