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은 어느새 수평선 너머에 가 있다. 기차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은 어떨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에서 치히로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를 탄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를 탈 수가 없다. 하지만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해변기차를 탄다면 그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달리는 해변기차 구간은 서너 곳이 있다. 영동선 동해역에서 강릉에 도착하기 전인 안인역까지의 40여 분간은 철길 바로 옆이 바다다.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이 위치한 기차역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정동진역도 이 구간에 있다. 손을 내밀면 바닷물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강원도까지 가기엔 너무 멀다.
이럴 땐 가까운 부산에서 해변기차를 타보자. 동해남부선에서 만나는 바다는 동해와는 조금은 다르다. 도심을 살짝 벗어나서 바다를 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해남부선의 기점인 부전역을 출발한 기차는 해운대역을 거치면서 해변기차로 변신한다. 해운대역을 떠난 기차는 해안가 집들의 지붕 위로 날아가는 듯하다가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미포건널목을 지나면서 기차는 곧바로 바다와 만난다. 달맞이길을 끼고 10여 분 기차는 바다를 달린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바다는 에메랄드빛이다. 등대도 보이고 부산 앞바다에 정박 중인 대형선박들도 점점이 바다의 풍경을 구성한다. 달맞이길을 휘감아 돈 기차가 다음 간이역인 송정역에 닿을 때쯤 바다는 손끝에 닿을 듯 가까워진다. 그래서 짧은 해변기차는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통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바다는 장관이다. 혹시라도 연인과 함께하는 해변기차라면 좋겠다. 아니 옆자리에 낯선 사내 혹은 소녀가 앉아있다면 가슴이 더 떨릴지도 모른다. 해변기차는 이 여름 한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은 추억이다.
송정해수욕장이 보이기 시작하면 해변기차는 절정에 오른다. 해수욕장의 뜨거운 모래와 작열하는 태양이 부러워진다면 거침없이 배낭을 꾸려 송정역에 내리면 된다. 송정역은 간이역이지만 무궁화호 열차가 매일 12차례나 서는 곳이다.
송정역은 1940년대풍의 단아한 간이역사의 표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목조 단층 기와지붕 형태의 송정역은 안동의 운산역, 의성의 단촌역사와 비슷한 모양이다. 역사 안도 깨끗하다. 여름이면 가끔씩 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이 오갈 뿐 평소에는 거의 승객이 없다. 지난 2006년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았다.
간이역사와 여름바닷가의 절정을 만끽했다면 다시 짐을 꾸려 송정역을 나서면 된다. 기차는 계속해서 해안선과 나란히 가지만 정작 울산에 도착할 때까지 바다와 나란히 가는 구간은 거의 없다. 월내와 좌천역구간에서 기차는 다시 해변기차로 변신한다. 느릿느릿 천천히 달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해변기차는 너무 빨리 달린다. 아무리 속도가 경쟁력인 세상이지만 가끔씩은 '느림의 미학'을 느껴보고 싶다.
해변기차에서 만나는 바다는 특별하다. 이른 아침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려면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첫차를 타는 것이 좋다. 부전역에서 오전 6시(새마을호)와 6시20분(무궁화호)에 출발한다. 요즘 일출시간은 오전 5시 43분이기 때문에 첫 기차를 타면 바다에서 막 떠오르는 태양을 기차에서 볼 수가 있다.
해변기차를 탈 때는 바다 쪽 좌석을 잡아야 한다. 부전에서 출발하는 기차라면 오른쪽이 바다 쪽이고 포항,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라면 왼쪽이 바다좌석이다. 차표를 살 때 왼쪽, 오른쪽 좌석을 정확히 말해야 한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훌쩍 떠나고 싶다면 부산에서 해변기차의 낭만을 만끽하는 것도 색다른 여름날의 추억을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글·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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