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 시조산책-권영오 作 '이슬비'

이슬비

권영오

먼 곳의 누가

손톱을 깎는지

토란잎 같은 하늘

톡톡톡 두드리며

비 오네

소쿠리 가득

푸성귀 얹는 소리

여름 한철의 작달비 말고, 그렇다고 는개는 아닌 그런 비. 그런 비가 소쿠리 가득 푸성귀를 얹는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푸성귀 얹는 소리'라? 시인의 귀가 아니면 어찌 그 소리를 들으며, 들은들 또 어찌 말로 바꾸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먼 곳의 누가/ 손톱을 깎는' 소리를 끌고 오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손톱 깎는 소리와 푸성귀 얹는 소리를 아우르며 오는 이슬비. 보면서 듣고 들으면서 느끼는, 이른바 공감각입니다.

종장 첫 음보 '비 오네'를 따로 떼어낸 것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앞뒤 구절을 밀고 당기며 이미지의 전환을 꾀하는데, 그게 제대로 맞아떨어졌다는 얘기지요.

시인은 이 고장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率家(솔가)해서 훌쩍 제주로 건너가 삽니다. 月餘(월여) 전에 첫 시집을 낸 신명을 여태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인데요. 시집 속에 제주의 토속 정서가 더러 끼어든 것도 그런 연유입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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