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범신은 글만 써서 가족을 부양한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설을 써서 처자식을 먹여 살렸다면 실력과 더불어 운도 좋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박범신은 다시 태어난다면 남편, 아버지, 소설가, 이 세 가지는 되지 않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전면 부인 혹은 의혹을 제기한 셈이다. 그는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술을 안 마신다고 했지만 얼굴이 붉어질 만큼 취하자 남편과 아버지, 소설가로 살아온 삶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화려한 삶을 살았다고 해요. 내 아내를 두고는 평생 헌신했다고 평가하고요. (그의 아내는 전업주부다.) 그러나 나도 헌신했어요. 나도 밥상을 차렸다 이 말이오. 나도 밥값을 했어요. (나를 아는) 내 아내는 나를 '가부장적'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런데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두고 가부장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말해요. 나는 집에서 아침밥을 얻어먹고 다녀요. 집에서 아침 얻어먹는 남편이, 아버지가 가부장적이야? 그건 너무 야박한 말이에요. 말이 났으니 말이지, 소설은 죄 많은 놈들이나 하는 거예요. 다시 태어나면 그거 안 합니다."
박범신은 '세상의 아내들은 평생 밥하느라 불행했고, 남편들은 평생 밥 벌어오느라 불행했다.'고 말하고, 그렇지만 밥하고, 밥벌이하는 인생을 우리가 불행이라고 말한다면 비참해진다고 했다. 인생이 그다지 아름다울 것은 없지만, 인생을 그렇게까지 남루하게 만들어서 좋을 게 뭐 있냐는 말처럼 들렸다.
박범신은 61세의 나이에도 '청년작가'로 불린다. 문장에는 여전히 감수성이 진하게 묻어나고, 전달하는 방식 역시 세련미가 넘친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연애소설도 쓴다. 여성의 심리변화를 잘근잘근, 세심하게 풀어내는 장면에서는 '이 작가가 남자가 맞기는 한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작품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청년이다. 휴대폰 문자를 잘 보내는데, 상대가 즉시 답하지 않으면 '왜 대답을 하지 않느냐?'고 금방 되묻는다고 한다.
'청년작가'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10일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재소설 '촐라체'를 쓰고 있다. 2005년 1월 히말라야 촐라체봉(해발 6천440m)에서 조난됐다가 극적으로 살아온 산악인 박정헌'최강식씨의 사연을 모티브로 하는 본격적인 등반소설이며 야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박범신은 인터뷰 중에 잃어버린 야성의 회복을 여러 번 강조했다. 어쨌거나 박범신은 200자 원고지에 육필 원고를 쓰는 몇 안 되는 작가인데, 중진 작가 중에 인터넷 사이트에 가장 먼저 소설을 발표하는 '젊은 작가'가 된 셈이다.
◇ 남자를 말하다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없어도 그만인 존재'이기 일쑤다. 허전한 거실 벽에 붙여놓는 '싸구려 액자'쯤으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다.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작가들은 진작부터 '아버지'를 때려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문학평론에서 '아버지'라는 낱말은 파괴해야 할 '질서' 혹은 '권위'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아버지와 자식의 화해를 그리는 드라마에서도 아버지는 '용서를 구걸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성인이 된 자식이 아버지에게 『당신의 잘못은 엄벌해야 마땅하지만 내 너그러이 용서한다』고 말하면 아버지는 『고맙다』고 눈물을 철철 흘리는 식이다. (제 부모에게 '용서'라는 낱말을 지껄이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용서를 구할지 궁금하다.) 또 성실하게 책임을 다 한 수많은 아버지들을 외면하고, 무책임하고 망측한 아버지들만 등장시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연출가나 작가의 능력이 한심해 보인다.
소설가 박범신이 그리는 아버지는 이런 아버지들과 사뭇 다르다. 그는 '50년대, 60년대, 70년대를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온 보편적인 사람을 그린다. 그들은 결코 정의롭지 않으며, 비굴하지 않으며, 변명하지도 않는다. 또한 아무데서나 눈물을 질질 흘리며 동정을 구걸하지도 않는다.
박범신의 작품 '침묵의 집'은 한 남자의 실종에 관한 소설이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남자는 평생을 가족과 회사를 위해 일했다. 그러나 그의 회사는 부도위기에 몰리고 경리 책임자인 그는 책임을 뒤집어 쓸 상황에 처했다. 그날 남자는 퇴근하기 위해 회사 문을 나섰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칙칙한 색깔의 우산을 들고 회사 문을 나섰던 남자는 노란색 우비(명도가 대단히 높은 색깔이다)를 입은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아이는 빗물 고인 자리를 피해 통통통 참새가 뛰듯 걷고 있다. 남자는 지금까지 '회사와 집'라는 궤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는,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여자아이를 따라 간다. 어느 건물 앞에 이른 여자아이는 철제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간다. 남자가 여자아이를 따라 도착한 곳은 화실이었고 여자는 꼬마가 아니라 꽤 이름난 중년의 화가였다. 남자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 작별하고 이 중년 여성을 따라 이국 땅을 여행한다. 파산직전의 회사,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을 두고 남자는 사라진 것이다. (중년의 두 남녀에게 에로스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시길….)
이 인상깊은 장면에 대해 박범신은 '여자가 입었던 명도 높은 노란색 우비는 감성의 세계, 낭만의 세계, 직관의 세계이자 죽음의 유혹'이라고 설명했다. 죽은 사람이 입는 질 좋은 삼베가 노란 색이라는 점에서 생각해낸 색깔이라는 것이다. 칙칙한 우산을 들고 칙칙한 세월을 살아온 '이 남자 주인공에게 노란색은 쳐다보거나 상상할 수 없었던 색깔'인 셈이다.
이 작품 '침묵의 집'은 2권 짜리였는데, 근래에 '주름'이라는 한 권으로 다시 출간됐다. 원작에는 아들 세대의 이야기도 많지만 '주름'에는 중년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 외에 박범신이 쓴 '남자들, 쓸쓸하다' 역시 삶에 무게에 짓눌린 남자들, 사회의 구석자리에서 불안한 헛기침을 뱉을 수밖에 없는 남자들의 속내를 작가 특유의 감성적 문체로 드러내고 있다.
◇ "안식을 찾아 헤매고 있다."
박범신은 정착을 모르는 사람 같다. 서울 평창동에 집이 있고, 명지대학 교수직을 갖고 있고, 이외에도 몇 가지 직함이 있다. 비교적 동선이 일정하고 어딘가 속한 사람임에도 그의 삶을 굽어보면 그가 떠돌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 중학교 교사, 인기 소설가, 절필, 산으로 향하기, 대학교수 등 그는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다. 그가 가진 직장은 어디에 내놓아도 반듯해서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을 몸담았을 곳이다. 최고 인기를 누리던 작가가 갑자기 절필(1993-1996년)하고 산으로 들어간 것도 예사롭지는 않다. 자식을 셋이나 둔 중년의 남자라면 돈도 많이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
"글쎄요. 갑자기 내 안에서 근본적인 질문들이 쏟아졌어요. 문학을 왜 하는가? 인생을 왜 사는 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남은 세월은 얼마이고 무엇인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내 안에서 쏟아지니 견딜 수 없었어요. 내 일, 내 삶이 모두 무의미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게다가 문학적 상상력도 고갈됐어요. 그래서 절필하고 떠났어요."
'돈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을 텐데. 집에서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았나요? 그냥 좀 버텨보시라고….'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했어요.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먼저 그러더군요. "당신, 그만 써요. 그러다가 죽겠어요." 라고 말입니다. 글쓰기를 중단했지만 별로 걱정은 안 했어요. 나는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곳간에 쌀을 재놓고 살수는 없지만 처자식을 굶기지 않을 자신은 있었어요. 지금까지 나는 한번도 가장의 책임을 피하거나 게을리 한 적은 없어요."
'무얼 그렇게 찾아 다녔습니까?'
"저는 사실 저잣거리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자식이 셋이나 있으니 세속적인 욕심도 있고요. 그런데 뭔가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좀 드니까 의문이 많이 들었어요. 하긴 사람살이라는 게 유랑 아니겠어요? 저도 그렇고…. 우리 모두…뜨내기들이죠. 만약 소설가가 되지 않았으면 목수가 됐을지도 몰라요. 나무 자르고 깎는 거 좋아해요. 다음 생이 있다면 구도자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찾아야 할 것은 결국 육신과 영혼이 쉴 장소 아니겠어요?"
절필 후 박범신은 한동안 산에 들어가 혼자 밥 지어 먹으며 살았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을 10번 정도 다녀왔다. 그는 산은 그 자체로 사원이며, 신의 영역이라고 했다. 산을 오르내리며 자유를 얻었다고도 했다. 요즘도 그는 종종 산을 오르는데, 1996년 작품활동을 재개한 이래 영혼의 안식과 거처,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 등을 주제로 산문집을 주로 쓰고 있다.
◇ 요즘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
박범신은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한다. 오래 전 우연히 반주도 없는 그의 노래를 들었는데 상당한 실력이었다. 얼굴도 잘 생겼다. 스스로 영국 출신의 영화배우 제레미 아이언스 닮았다고 말한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로 악역을 맡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닮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을 법한데, 여러 번 강조했다. 술 덕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박범신은 무척 솔직하게, 그리고 다소 흥겨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농담도 많이 했지만 다 싣지 못할 뿐이다.
"내가 요즘 태어났으면 정말 '끼'를 발휘했을 거야. 나는 할 줄 아는 게 많아. 술 잘 마시지. 노래 잘 하지, 인물 좋지. 내가 뭐가 빠지냐? 그런데 내가 젊었던 시절엔 '끼'가 통제의 대상이었어. 그러니 뭐 웬만큼 '끼' 있는 사람들도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야 했지."
박범신은 할 줄 아는 게 많은 작가가 분명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여성성의 단면을 여성 작가보다 더 잘 드러내는가 하면(소설 '외등'), 남성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도 많이 썼다. 최근 인터넷에 연재를 시작한 소설 '촐라체'를 두고 작가 스스로 '남자의 이야기'라고 밝힌 바 있다.
작가 박범신 속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극단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여자 형제들 사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성적인 면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불어 그의 외모는 선비풍이지만 또한 야수 같은 이미지를 종종 드러냈다. 보통 사람의 얼굴은 무척 화 났을 때가 아니면 야수 같은 빛이 드러나지 않는데, 작가 박범신의 낯빛은 '선비 같은 낯빛'과 '야수 같은 낯빛'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고갔다. 본인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그랬다. 낯빛이 사람 속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면 박범신 속에는 극단의 '선비'와 극단의 '야수'가 공존하는 듯 했다.
▷ 박범신=1946년 충남 논산 출생. 전주 교육대학, 원광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로 데뷔.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단편을 발표,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9년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을 발표.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침묵의 집' '주름' '외등' '흰 소가 끄는 수레' '비우니 향기롭다.' 등 출간. 화려하고 섬세한 문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렸다. 2003년 만해문학상, 2005년 한무숙 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자문위원,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글.사진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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