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또 다른 삶 "여기 주민이 되면 모든 꿈이 이루어져요"

컴퓨터그래픽은 영화나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터넷의 발달로 가상공간, 가상세계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실생활과 닮은 또다른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미니홈피에 자신의 방을 꾸미거나 게임 '리니지' 속의 가상공간을 누비는 수준을 넘어서는 말 그대로 '또 다른 삶'이 그래픽의 도움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2003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정보기술 업체인 린든랩이 시작한 인터넷 속의 가상현실 사이트 '세컨드라이프'가 바로 그 것. 이용자들은 3차원 컴퓨터그래픽으로 이뤄진 인터넷 세상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살아간다. 게임처럼 어떤 미션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실제처럼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 하늘을 날거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아바타로 살아갈 수 있고, 건물을 짓거나 악기를 만드는 상상 속의 행동이 가능하다. 또한 학교를 가거나 콘서트를 보는 것도 가능하다. 세컨드라이프에서는 이용자들을 '주민'이라고 부른다. 서비스가 시작된 뒤 작년 초만 해도 주민은 10만 명 정도에 그쳤지만 작년 말부터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해 현재 인구는 870여만 명. 연말이면 2천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컨드라이프에는 일정한 룰이 없다. 게임처럼 승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물론 게임을 즐길 수도 있지만) 마치 일상생활을 하듯이 아바타가 땅을 사고, 집을 짓고, 물건을 사고 파는 활동을 하는 곳이다. 린든랩측은 "세컨드라이프는 전적으로 사용자가 창조하고 참여하면서 이뤄지는 영속적인 온라인 가상세계"라고 밝혔다.

아울러 사용자는 세컨드라이프에서 자신이 꿈꾸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빌딩이나 상품을 만들어 팔거나 여행을 떠날 수도 있으며, 애인을 만들어 마음만 맞으면 사이버섹스도 가능하다. 물론 지나치게 현실을 닮다보니 범죄까지도 벌어지고 있다. 때문에 린든랩은 최근 일체의 도박행위를 금지시켰다. 사이버머니인 린든머니 및 각종 상품권 등이 비합리적으로 교환되는 경우 또한 금지대상에 포함시켜 앞으로 새로운 도박행위의 출현 가능성까지 원천봉쇄했다. 현재는 어른, 아이 구분없이 들어올 수 있지만 앞으로 만 18세 미만 이용자는 별도의 서버로 이전하는 작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용자가 상품을 만드는 것도 컴퓨터그래픽을 통해서 가능하다. 주민들은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컴퓨터에 설치한 뒤 린든랩 서버에 접속하면 쉽게 세컨드라이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 뒤 그래픽 도구를 이용해 원하는 물건을 만들면 된다. 구, 원뿔, 기둥 등 단순한 3차원 도형(세컨드라이프에서는 이를 '프림'이라고 부른다)들을 합치거나 변형해서 복잡한 물건을 만든다. 이 과정은 게임이나 영화에서 3차원 캐릭터나 배경을 만드는 작업과 기본적인 원리는 똑같다. 프림의 좌표값을 조정하고 색깔을 입히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애시드 크레비즈라는 한국회사가 세컨드라이프에 경회루를 지어 화제가 됐다. 경회루를 짓는 데 2개월 정도가 걸렸다고. 자료조사와 답사를 통해 데이터를 모으고, 이 것으로 실제 건물을 짓듯이 설계도를 그린 뒤 컴퓨터에서 3차원 그래픽으로 만들다. 특히 한국의 전통 문양과 곡선 등을 잘 표현한 덕분에 세컨드라이프에서 정교한 건축물로 소문이 났을 정도다.

세컨드라이프도 자본주의 시장 원리에 따라 돌아간다. 사용자들은 공식 통화인 '린든 달러'로 경제활동을 한다. 린든 달러는 달러화로 환전되며 환율도 고시된다. 대략 267린든 달러가 미화 1달러 정도. 실생활에서 이 돈을 환전할 수 있기 때문에 세컨드라이프에서 돈을 벌면 현실에서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실제 월 5천 달러 이상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100여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과 학교, 정치인들도 속속 신대륙 세컨드라이프에 깃발을 꽂고 있다. IBM,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델, 도요타, 소니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이미 사이버 지점을 개설한 데 이어 하버드, 스탠퍼드대 등 미국 명문대들도 세컨드라이프에 캠퍼스를 열었다. 미국 유력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 등 대권 후보들은 일찌감치 사이버 대선 캠프를 차려놓고 활발하게 유세를 벌이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대사관을 열고 사이버 외교를 펼치겠다고 밝혔고, 로이터 통신은 세컨드라이프 전담기자를 두기도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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