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3년동안 고락을 같이한 책가방·교모

나에게 보물1호라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물건이나 사랑하는 사람일 것 같은데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학창시절에 들고 다녔던 검정 교모와 책가방을 꼽고 싶습니다.

1980년 2월, 공주군 계룡면 버들미 출신의 시골 촌놈이 버스를 타고 공주로 올라와 어머니와 함께 산성동 공주시장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검정 교모와 추억의 책가방을 샀습니다.

지금의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그 시절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은 모두 검정 교복에 교모, 그리고 추억의 책가방을 하나씩 사서 3년 동안 지겹도록 입고, 머리에 쓰고, 들고 다녔습니다.

3년의 재학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했던 복장이 지겨웠는지 어떤 친구는 졸업식 날 교복에 흰 밀가루를 뿌리고, 칼로 모자와 가방을 갈기갈기 찢기도 했습니다.

이는 자유와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획일적으로 통제돼 왔던 세월에 대한 반항심과 그러한 세월의 종말을 표현하는 것으로 졸업식의 진풍경이었으나, 때론 사회문제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난 그 애물단지를 나의 안방 서재 책장에 '보물단지'처럼 모시고 함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983년 2월 모교 졸업식 날 때늦은 폭설이 내렸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졸업식이라는 의식으로 고교시절의 마침표를 찍고 대학으로, 직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시골집 사랑방에서 난 이제는 쓸 일이 없어진 교모와 책가방에 대해 어찌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책가방과 교모는 나와 3년 동안 고락을 함께했던 내 분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 군대, 취업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교모와 책가방을 버리지 않고 다락방 박스 속에 고이 간직했다가 30세쯤에 새 가정을 꾸려 분가할 때 시골집에서 챙겨 가지고 나왔습니다.

나의 처는 고향의 여고를 졸업했기 때문인지 교모와 가방을 소중한 추억의 물건으로 생각해 정성스레 잘 관리해주던데요.

그 후 나는 여러 번 이사를 했습니다. 이삿짐을 쌀 때마다 아내가 나의 교모와 책가방을 정성스레 다루는 것을 보고 애들도 아빠의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40세의 나이에 딸 하나, 아들 둘의 가장입니다. 고교를 졸업한 지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 교모와 책가방은 나에게 보물 1호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고등학교 재학 시절 당시의 함성과 모습이 선합니다. 공주고등학교 1학년 4반 시절, 월요일 아침 전체 조례 시간에 거수경례를 하며 '전진!'이라고 외쳤던 함성이 가슴속에서 쿵쿵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가 힘껏 외쳐봅니다. "전 진~!"

전병태(대구시 서구 평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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