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말 영국 런던에서 러시아 전직 첩보원인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사망하면서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의 사인은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210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우라늄 농축과정에서 소량 생성되는 물질인 폴로늄210은 엄청난 독성을 지닌 희귀물질.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킬뿐더러 해독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용의자 체포를 둘러싸고 양국 간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한 이 사건은 독살의 공포가 여전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현대에는 독살에 사용된 독극물을 밝혀내기가 쉽다. 그러나 연쇄살인범 중에는 여전히 독극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독극물 살인 사건은 주로 1850년대 초반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의 기록이다. 독극물이 추출 가능하고 또 독극물이 감쪽같이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무기로 사용가능하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된 시기이다.
책에 소개된 16가지 독살 기록을 읽다 보면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비소니 스트리키닌이니 시안화물, 탈륨, 니코틴 등 그 가짓수도 다양하다. 끔찍한 것은 사건의 피해자들이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량의 독극물을 섭취하게 해서 서서히 고통을 겪으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켜보는 과정이 뒤따랐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도 모른채 죽어갔다.
독살 사건으로 인해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들의 직업도 동기도 다양하다. 술집을 경영하면서 아내들을 죽인 난봉꾼도 있으며, 타고난 능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돈을 노려 인척을 살해한 젊은 의사도 있다. 독물 중독이 된 남편의 죽음에 일조한 아내도 있고, (죽을 때까지 무죄를 주장했던) 독극물을 이용한 은행강도 사건의 주인공인 화가도 있다.
16가지의 사례 중에서 인상적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니코틴에 관한 내용이다. 담배의 주요 성분 중인 하나인 니코틴에 관한 내용은 익히 알려진 터, '파산한 백작'은 니코틴이 강력한 독약임을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파산 지경에 이른 벨기에의 이폴리트 드 보카름 백작이 유산을 노리고 아내와 공모해 구스타프 후니에를 독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니코틴 검출법을 발견한 것이다.
지은이의 각 사례의 마지막에 내용 중에 소개된 독극물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니코틴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는데, 담배 한 개비에 포함된 니코틴의 양을 정제하면 성인 한 명을 죽이기에 충분한 양이라는 내용이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흡연자가 들이키는 니코틴의 양은 극히 소량'이라고 부연한다. '담배가 타들어 가는 동안 거의 연기가 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옮긴이는 이런 얘기를 적고 있다. '본서에도 나오듯이 뚜렷한 동기 없이 시험 삼아 독을 먹이는 사람도 있으니. 모두 현대사회가 그런 사람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지만.'이라고.
당시의 기록이 과거의 얘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독살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가 되는 점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독살사건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얼마 전 바로 우리 이웃에서 일어난 요구르트 독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렇게 안전지역도 아닌 것 같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돈이 최고의 가치로 떠오른 세상에서, 보험금을 노린 끔찍한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독을 이용한 살인 사건도 이젠 쉽게 볼 수 있게 되지 않을지 하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324쪽. 1만 3천700원.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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