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기초하는 '사실(fact)'이란, 비유하자면 '고기를 잡는 그물 줄과 같다.' 라고 생각해봤습니다. 직업이나 돈과 명예 등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 혹은 혈연과 지연 등에 얽힌 인간관계가 날줄과 씨줄로 얽혀 사람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사실로 쓰이고, 그것이 또한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결코 삶을 차지하는 중요한 대부분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압니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바다에 나가 행복과 진실이라는 두 마리 고기를 낚을 때 필요한 그물일 따름 아니겠습니까? 가만히 보면 그 그물은 구멍이 뻥뻥 뚫린 망(網)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아주 촘촘히 엮어져야 많이 잡힐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물론 너무 코가 성긴, 어설픈 현실감으로는 얻을 게 별로 없겠지요.
그러나 너무 촘촘한 정치망(精緻網)으로는 무거운 바닷물에 휘둘려 괜히 힘만 들기만 할 뿐, 한참이나 헛되이 힘을 쓰고서 겨우 물이 빠져나가면, 거기엔 쓸데없는 진흙이나 버려진 바다 쓰레기 같은 것이 남아있거나, 혹은 그것 때문에 찢어진 그물 사이로 정작 잡고자 하는 고기들을 다 놓쳐버릴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삶을 채우는 것에는 그물코를 촘촘히 이루는 '사실'만 있는 게 아니겠지요. 듬성듬성한 그물코 사이로 많은 것들을 잃고, 버리고, 베풀고, 그래서 그렇게 걸러낸 후 내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한 고기를 잡는 것, 그 가치와 재미를 얻는 게 삶의 큰 줄거리일지 몰라요.
그래서 진실이라는 것은 사실에 기초하지만 사실을 뛰어넘는 어떤 다른 성과일 겁니다. 그러나 막상 바다에 다다르고서도 잡아야 할 고기는 못 잡고 허랑한 시간 다 보내버리는 경우도 있겠지요. 하염없이 그물만 짜면서, 혹은 찢어진 그물코만 손보다가 하루해를 다 보내거나, 어떤 땐 그럴듯한 그물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걸 실을 고깃배를 찾지 못해서 그러기도 합니다.
고기떼 소식을 알지 못해서 돛을 올릴 수 없거나, 폭풍이 몰려온다는 기상예보가 겁나 출항 날짜를 계속 미루기만 하다가, 조급한 마음에 고기가 놀지 않는 엉뚱한 곳에 투망을 하여 허탕치기도 하겠지요.
저마다 보석처럼 매달리지만 사실은 무거운 납덩이에 불과한 책임감, 윤리의식, 사명감 같은 갖가지 모양의 추를 달고, 오늘도 현실의 바다에 그물을 가라앉히지만, 글쎄요? 요즈음 내 가슴은 흉어기(凶漁期)라서 그물 속엔 고기 한 마리 없네요.
조현열 아동문학가·신경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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