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럽아트순례 2007] (중)獨 카셀 도쿠멘타

과거·현재작품 혼재…미술의 뿌리 한눈에

독일 중부의 소도시 카셀에서 5년마다 개최되는 '도쿠멘타'(dokumenta)는 그 명칭이 제시하듯 '기록' 또는 '보고'란 의미를 안고 1955년 아놀드 보데(Arnold Bode)에 의해 창설되었다. "많은 수의 작품으로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현대미술이라고 부르는 작품 또는 예술적 태도의 출발이 어떻게 형성되었나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는 게 설립자의 취지.

따라서 지금까지 12차례의 행사를 통해 동시대적인 것의 계보학과 예술적 소통의 문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도쿠멘타는 탈서구적·글로벌화된 시각의 모더니티. 정치화된 삶을 화두로 삼고 예술과 대중에게 '모더니티는 우리의 유물인가' '무엇이 헐벗은 삶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총감독 로저 뷔르겔(Roger Buergel)과 그의 부인인 큐레이터 루트 노악(Ruth Noack)은 '모더니티, 삶, 교육'이란 키워드가 카셀 도쿠멘타(Dokumenta Kassel) 12에 참여한 모든 이에게 틀에 짜이지 않는 임의적인 생산성을 제시한다고 믿는다.

이번 행사의 특징은 우선 국제적인 지명도가 없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다수의 중국작가 그리고 일본·타이·인도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단 한 명의 한국작가도 선정되지 않아 유감이다. 또 전시된 작품 중 3분의 2는 오늘날의 작품들이고 나머지는 14세기 페르시아 드로잉에서부터 20세기 중후반까지의 과거 작품들이다.

이는 동시대 미술을 이해하려면 그 뿌리와 연원을 알아야 함을 의미한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회화가 부각된 점과 게오르그 쉘하머(Georg Schoellhammer)가 주관한 '도쿠멘타 매거진'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번 행사의 세 주제를 전 세계 90종의 잡지를 통해 담론화하는 형식인데, 우리나라 잡지 '볼'은 '헐벗은 삶'을 특집호로 다루고 있다.

122명의 작가들이 480점의 작품들을 프레데리치아눔 미술관, 도쿠멘타 할레, 노이에 갤러리, 빌헬름스회에 성, 그리고 이번에 새로 세워진 아우에 파빌리온에 펼쳤다. 바르셀로나 근교에 위치한, 실험적인 요리로 유명한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의 레스토랑 '엘불리'가 이번 도쿠멘타의 특별 공간으로 지명된 것은 미적 체험의 영역을 넓히려는 총감독의 의도이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예로 중국작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동화'를 꼽을 수 있다. 여러 지방에서 응모한 다양한 계층의 중국인 1천1명을 카셀로 200명씩 다섯 차례에 걸쳐 오게 하는 이 프로젝트는 스위스의 한 기업이 후원한 덕분에 실현되었다.

개인주의적인 서구사회에서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중국인들에 의해 동양과 서양, 예술과 비예술의 대비, 수동적인 관람에서 적극적인 참여로의 전이가 이루어졌다. 같은 맥락으로 타이 작가 쿠루-온(Sakarin Krue-on)의 계단식 논은 100일 동안 벼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려는 작업이다.

지역 간의 분쟁 또는 현대판 식민지와 인간의 삶을 연관시키는 작업들도 있다. 421개의 플라스틱 통으로 구성된 하주메(Romuald Hazoume)의 거대한 배, 역시 폐품을 이용한 아프리카 조각, 두약(Ines Doujak)의 모종작업, 이스라엘 군의 팔레스타인 도시 진압 당시 폭격에 놀라 죽은 기린을 그대로 박제한 프리들(Peter Friedl)의 '동물원 이야기'가 그것들이다.

1982년 도쿠멘타에서 요셉 보이스가 심었던 떡갈나무가 자란 프리드리히 광장을 붉게 타오르게 만드는 이베코비치(Sanja Ivekovic)의 '양귀비 꽃밭'은 강대국의 권력 아래 과연 글로벌 문화가 존재하는가를 질문하는 작업이다.

스무 명 정도 특정 작가들의 작품은 거의 모든 전시 공간에 편재되어 있는데, 호모 에로틱한 이미지로 남미 정치의 불행함을 표현한 다빌라(Juan Davilla)의 그림, 맥크라켄(John McCracken)의 미니멀한 조각이 그 예이다.

또한, 시대적 흐름과 예술의 계승은 이번에 선의 흐름이라는 양상으로 강조된다.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건물 외양과 내부를 자유자재로 연결하는 프레이타스(Iole de Freitas)의 작업, 포스터모던 댄스의 기수 브라운(Tricia Brown)의 퍼포먼스 '숲의 바닥', 구불거리는 머리칼로 구성된 콜라로바(Bela Kolarova)의 사진, 젱 구오구의 '폭포', 고우다(Sheela Gowda)의 튜브작업이 그것들이다.

6월 16일에 시작해 9월 23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는 수백 점의 작품들을 중복과 나열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인해 그 문맥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지역적 특수성과 역사성을 부각하면서 글로벌한 이슈의 중심에 카셀을 위치하게 한 점은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이런 이유로 세계 미술계는 5년 후 다음 도쿠멘타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박소영(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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