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경제 붕괴로 한 허름한 고시원에 살게 된 20대 청년의 생활상을 그린 박민규의 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 소설에서는 합판 한 장을 사이에 둔 고시원에서 한 청년이 다른 고시생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소음을 줄이려는 노력을 묘사하고 있지만, 대구 도심에서 이런 고시원을 찾기는 어렵다.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직장인과 졸업생, 심지어 학교와 거리가 먼 학생들의 단기 공부방으로 활용되고 있는데다 특히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여름철 생활 터전으로 각광받으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대구 북구의 3층짜리 한 최신식 고시원은 2㎡ 남짓한 크기의 방 9칸을 층마다 두고 있다. 화장실 두 칸, 샤워기 두 대, 세탁기 한 대. 생활자도 20명이 넘었다. 그러나 이중 고시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시원을 운영하고 있는 M씨(55·여)는 "방학이 되면 고시생들이 간혹 오긴 하지만 학기 중에는 오히려 고시원을 자취방 삼아 생활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고시생들의 경우 대부분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대구에서는 좀처럼 고시준비생을 찾기 힘들다는 것.
대구에 집이 있지만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취업준비생 K씨(28)는 "학교와 거리가 가깝고 더위도 피할 수 있는데다 집에 눈치를 덜 봐도 돼 고시원이 편한 것 같다."고 했다.
이 때문인지 고시생들의 집중을 위한 '침묵'은 더 이상 고시원에서 필수요소가 아니다. 휴대전화 벨 소리는 물론 TV 소리도 들리기 일쑤. 팔공산 주변의 고시원에 들어가려다 학교 주변을 택했다는 K씨는 "실제 고시생들은 더 조용한 팔공산 주변 고시원 등을 선호한다."며 "이곳은 옆방이 시끄럽더라도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벽이나 문을 두드리는 일은 없다."고 했다. 도심 고시원이 이미 대학생이나 졸업생, 직장인들의 공부방 겸 자취방이 돼 버렸기 때문이란 것.
고시원이 '비고시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렴한 이용료 때문이다. 고시원의 한 달 이용료는 20만 원 선으로, 보증금 300만 원에 월 25만 원 선, 전기세 별도인 주변 원룸의 임대료보다 싼 것. 한 고시원 관계자는 "일반 자취방에 비해 방 크기는 작아도 무더운 여름철 공부하고 생활하기엔 고시원이 제격이어서 학생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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