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상징하는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齊寫樂)와 조선의 대표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의 동일인물 여부에 대해서 몇 해 전에 KBS와 일본의 아사히방송에서 다룬 적이 있었다.
김홍도는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선의 대표적인 궁중화가로 일반적으로 풍속화를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모든 장르에 걸쳐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천재 화가였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일본에서의 샤라쿠(寫樂)는 어디에서 출생하여 누구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지금까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생몰년의 문헌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샤라쿠를 연구하는 학자들만큼 샤라쿠가 존재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샤라쿠는 1794년 5월 어느 날 에도(江戶·지금의 도쿄)에 홀연히 나타나 10개월간 우키요에(浮世繪·일본의 풍속화) 140여 점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미스터리 화가이다.
그런데 그 우키요에는 마네, 모네, 드가 등 전기 인상파를 비롯하여 고흐의 후기 인상파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회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그림이다. 이 두 화가가 과연 동일한 인물의 김홍도인가라는 점이 문헌학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한 예로, 샤라쿠가 일본에서 활동했던 10개월 동안 조선에서는 김홍도의 그 어떤 문헌과 행적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만일 '두 화가가 동일인물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면,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자로서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우키요에는 현대 디자인에도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친 세기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실적 표현성보다 섬세한 선과 면에 의한 대담한 화면 구성법, 심플하면서 풍부한 색채, 해학적 화풍과 내용의 자유로움 등은 현대 디자인의 뿌리가 된 셈이다. 이것이 우리 디자이너 김홍도에서 출발했다면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세계의 디자인 역사가 바뀐다.
결국, 필자도 공부를 하며 영향을 받은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 디자인들도 샤라쿠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일본에서 '또 한 사람의 샤라쿠'라는 저서를 통해 여러 가지 근본문제를 제기한 학자 이영희의 "나는 문헌 연구자로서 문헌학적으로는 증명했다. 이제부터는 샤라쿠와 김홍도의 작품들을 비교·연구하는 것이 한국의 미술사학자들과 관련 연구자들의 몫이다."라는 말이 가슴을 때린다.
박병철(대구대 조형예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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