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락을 떠나 후보자들은 한시름 덜겠지만 나는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경선 후유증 걱정 때문에 잠도 설친 적이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1년 2개월간에 걸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전이 이명박 후보의 승리로 끝났지만 앞으로도 풀어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최대 관심사는 두 후보 간의 '화합'이다. 다음은 13번의 합동연설회에서 벌인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 설전 내용.
"양파처럼 까도 까도 의혹이 나오는 후보"(朴) "양파는 아무리 까도 양파만 나온다. 모든 게 새빨간 거짓말"(李) "바깥보다 안에서 던진 돌이 더 아프다."(李) "그러나 후보로 결정되면 돌멩이가 아니라 바윗덩어리가 날아올 것이다."(朴) "왜 그렇게 독해졌나?"(李) "거짓말 안 하고 성실한 분에게는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사람이다."(朴)
신뢰와 동지애가 생명인 정치권에서 두 사람의 공방을 들여다보면 불신의 수준을 분명히 넘어섰다. 도저히 한 배를 다시 탈 것 같지 않을 모습이었고 특히 일각에서는 패자의 카드로 탈당을 점치기도 했다. 탈당사태를 피해 패자가 당에 남더라도 지속적으로 '후보 흔들기'를 할 경우 당의 혼란은 피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박 두 후보의 앙금 털기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데 이견은 없다. 지도부가 최근 서둘러 1만 명 규모의 중앙위원회 연찬회와 사무처의 조직적인 화합 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강 대표는 금명간 4명의 후보를 초청해 소주파티를 벌인다. 그는 이날 후보자들에게 "당선자와 낙선자의 태도가 모두 중요하다. 당선자는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에서 상대쪽 인사들을 배려하는 등 상처 봉합을 위해 붕대를 잘 감아줘야 하고, 낙선자도 유도에서 낙법이 중요하듯이 떨어질 때 처신을 잘 해서 결코 다치는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할 계획이다.
당선·낙선자들 모두 일단은 화합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20일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사랑하겠다."고 말했고, 낙선한 박 후보도 "패배를 인정한다.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사자와는 다르게 지지자들에 의해 앙금이 생길 가능성은 남아 있다. 우상호 대통합민주신당 당헌당규 위원장은 21일 "다자 구도가 아닌 1대 1로 진행된 양자선거 구도에서는, 당사자들은 정치적으로 화합할 수 있지만 주변까지 화합을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진단했다.
우 의원의 진단대로라면 지역 정치권도 당선·낙선자 중 어느 쪽에 줄을 섰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갈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지역 의원은 "전당대회가 끝난 뒤 다른 후보 측 인사를 만났는데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악수하는 손에서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강 대표는 '당선자의 탕평책'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당선자는 나 혼자 당선될 수 있다는 태도를 버리고 앞으로 구성될 선대 기구 등에 낙선자 측 인사를 더 많이 기용하는 등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립인사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지역의 경우, 장윤석·이한구 의원 등 중립인사들과 힘을 합쳐 양측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당선자의 입장에서 보면 검찰수사 결과 발표를 비롯해 줄줄이 터져나온 부동산 비리의혹, 투자자문회사 BBK 논란, 위증교사 논란, 차명 재산 8천억 원 은닉 논란, 서울시장 권한을 이용한 특혜시비 등 각종 '의혹 시리즈'에 대한 명확한 해명도 넘어야 할 과제. 검찰과 여권에서 언제 터져나올지 모르는 이 같은 악재는 후보 교체론과 맞물려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후보 측은 "경선과정 속에서 박 후보 측과 주고받은 각종 '검증 공방'이 오히려 내성을 키워 줬다."며 "박 후보의 끈질긴 추격을 끝내 따돌린 '뒷심'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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