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군정서에서 민족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이 1933년 사망했다. 1872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영남의 석학 남정한의 막내딸로 태어난 남자현은 19세때 김영주와 결혼했다. 1895년 남편이 의병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자 유복자를 기르면서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갔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하면서 군자금과 군량미 모집 등을 통해 독립투쟁단체의 뒷바라지를 했다. 또 10여 곳에 여성교육회를 조직하여 여권신장과 여성계몽에도 힘썼다.
1925년 박청산과 함께 국내로 잠입,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암살을 계획했으나 실패했다. 1932년 국제연맹 리튼조사단이 하얼빈에 왔을 때 손가락을 잘라 '조선독립원'이란 혈서를 써서 끊어진 손가락과 동봉하여 조사단에 전달,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이듬해 이규동 등과 함께 주만일본대사 부토 노부요시를 살해하려고 폭탄과 무기를 휴대하고 가다가 체포되었다. 6개월간의 혹독한 고문에도 단식으로 항쟁하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하얼빈에서 숨졌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04년 중국 정치가 덩샤오핑 출생 ▶1910년 한일합병조약 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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