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정현종 作 어떤 적막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불쌍한 사람들.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전화기에 매달리고, 쇼윈도를 기웃거리고, 자판을 두드리고, 페루의 아침과 뜨거운 연애를 꿈꾼다. 하지만 그 꿈의 둥근 안팎은 늘 적막했고, 적막하고, 적막할 것이다. 그 적막함은 곧 우주적 결핍. 결핍에서 와서 결핍으로,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결핍으로 빨려들게 마련이다.

모든 존재의 맨얼굴은 부재. 수다와 다변이 침묵의 같은 얼굴이듯이 우리의 모든 꿈과 소망은 부재 위에 핀 헛꽃에 불과하다. 그 부재의 공간 속으로, 적막의 가이없음 속으로 우리는 멀지 않아 돌아갈 것이다. 내가 늘 차고 다녔던 시간의 꽃팔찌를 탁자 위에 다소곳이 놓아두고…….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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