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강소국의 조건-외국어 능력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7년도 국가경쟁력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지난해보다 세 단계 뛰어올라 29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GDP규모의 세계 순위(13위)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 국가경쟁력 상위 10개국 중에서 8개국이 强小國(강소국)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지난해에 이어 국가경쟁력이 미국에 이어 각각 2, 3위에 올랐다. 룩셈부르크,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등 유럽의 강소국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듯이 국가경쟁력도 결코 덩치 순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국가경쟁력이 앞선 강소국들의 공통점으로는 작은 정부, 규제완화, 개방성, 유연한 노사관계, 우수한 인적 자원, 그리고 외국어 능력을 들 수 있다. 특히 글로벌 경제와 지구촌 시대를 맞아 국민의 외국어 능력은 강소국들의 중요한 성공요소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세계적인 물류와 금융의 허브 역할을 하고, 국가경쟁력이 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에는 비즈니스와 금융부문의 세계 공용어인 영어가 자유롭게 통하고 영어에 능통한 전문 인력이 많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EU집행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모국어 외에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국민의 비율이 룩셈부르크가 99%, 네덜란드 91%, 덴마크 88%, 스웨덴 88%, 핀란드 66%이다. 이들 유럽 강소국 국민의 외국어 사용인구의 비율은 유럽 평균 50%를 크게 웃돌고 있다. 범 불어권의 맹주로 프랑스어에 대한 자긍심으로 똘똘 뭉쳐 있고 반개방적 문화가 남달리 강해 전 국민의 45%만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프랑스의 국가경쟁력이 28위에 머문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부존자원이 적을 뿐더러 대외의존도가 70%를 웃도는 우리나라가 이들 강소국을 본받아야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FTA 체결로 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길로 들어선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개도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와 교류하고 소통하기 위한 수단인 외국어 경쟁력을 더욱 키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외국어 중에서도 세계 공용어이자 지식정보화 시대의 중심 언어인 영어 구사 능력은 개인은 물론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계 3억 2천200만 명의 인구가 영어를 모국어나 공용어로 쓰고 있고, 인터넷 콘텐츠의 68%가 영어로 되어 있다. 과학인용지수(SCI)와 사회과학인용지수(SSCI)에 등재된 학술지 중에서 각각 73%와 85%가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뉴스위크지가 꼽은 세계 100대 대학도 75개가 영어권에 속해 있다.

날로 성장하고 있는 금융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 금융거래의 공용어는 바로 영어다. 홍콩에 아시아 지역본부를 둔 다국적 기업이 1천167개이고 싱가포르는 350개인데 비해 서울은 고작 11개에 불과하다. 이는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한 컨설팅회사가 아시아 12개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를 '영어로 의사소통하기 가장 힘든 나라'로 꼽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이제껏 추진해온 '동북아 금융허브'도 선진금융 기법과 영어에 능통한 금융전문 인력의 확보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이젠 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접고, 광풍에 가까운 영어 사교육 시장을 바로잡는 한편, 해외 유학과 어학연수에 의한 막대한 규모의 국부 유출을 막는 공교육 시스템의 정상화에 힘을 쏟을 때가 아닌가 한다. 언어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 뇌 속의 LAD(언어습득장치)는 14세 무렵까지 왕성하게 작용하다가 그 이후부터는 점차 쇠퇴한다고 한다. 언어습득의 결정적 시기인 LAD 작용기에 언어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된다면 몇 개의 언어라도 모국어처럼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이 마법과도 같은 언어습득 능력을 살려주는 일은 일차적으로는 부모의 책임이지만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은 십수 년을 공부하고도 외국인과 제대로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양산하는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혼란과 파행을 거듭해 왔다. 영어의 중요성은 커지는데 공교육을 믿지 못하는 학부모들은 너도나도 아이들을 학원과 해외로 내몰고 있다. 나라 안팎에서 지출하는 영어 사교육비 규모가 15조 원에 육박하고 있는데 비해, 세계 토플 성적 순위는 148개국 중 103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들 학부모의 행위를 무모하다거나 비합리적인 행위라고 마냥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외국어가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인 만큼, 우리 경제의 규모와 위상에 비해 턱없이 떨어지는 국내 외국어 교육을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할 것이다. 조기 외국어 교육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외국어가 돈을 벌고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이 외국어 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개방화와 세계화가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해야 할 우리에게 외국어능력이야말로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맞서기 위한 강력한 무기이자 인프라이기도 하다.

이화언 대구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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