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금, 일해공원에서는

경남 합천군이 올해 1월 29일 황강변에 있는 '새천년 생명의 숲'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日海)공원'으로 바꾸면서 크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일해공원'은 최근 영화 '화려한 휴가'의 개봉과 더불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합천군측은 '더 이상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변한 것이 없으니 말할 것도 없다.'고 했다. 합천군의 한 간부는 "먼길 오셨는데 드릴 말씀이 없어 미안하다."고 했고, 다른 간부는 "욕부터 해대는 사람들 때문에 업무를 못 볼 지경"이라며 난처함을 표시했다. 이에 비해 '일해공원'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측은 적극적으로 생각을 밝혔다.

-전문-

◇ 자고 나면 바뀌는 안내간판

합천군은 올해 초 공원명칭을 '일해공원'으로 확정, 공고하고 7월 5일 안내간판을 교체했다. 그런데 영화 '화려한 휴가' 개봉 직후인 7월 27일 밤에 누군가가 '일해'라는 글자를 떼어 냈다. 이에 합천군은 안내간판을 다시 제작해 31일 붙였다. 합천군은 "저절로 떨어진 것은 아니고 일해공원에 반대하는 사람이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해' 글자를 떼어내는 것을 비롯해 '일해공원' 안내판에는 '광주학살범' '살인마 전두환' 이라는 낙서가 씌어 있다. 또 '일해공원'이라는 글씨 위에 매직으로 'X'를 긋고 '생명의 숲'이라고 써놓은 글씨도 보인다.

공원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남진보연합과 민주노총 회원 등 200여명이 이 달 12일 오후 2시 '일해 공원' 안내판을 다시 떼어내고 준비해 간 '새천년 생명의 숲' 안내판을 붙였다. 이들은 이에 앞서 '일해공원' 공원 입구에서 안내판이 있는 3.1독립운동 기념탑까지 250m에 이르는 구간에서 5.18 영령을 기리며 삼보일배 행진을 벌였다. '일해' 글자가 떨어진 다음 날은 비가 내렸다. 합천군측은 즉시 새 간판을 붙이려 했지만 접착제가 붙지 않아 붙이지 못했고 14일 아침 '일해' 글씨를 다시 달았다.

'생명의 숲 지키기 합천군민 운동본부' 측 박현주 의원(민주노동당 합천군 의회)은 "앞으로도 '일해공원' 반대운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새명의 숲 지키기 합천군민 운동본부' 측은 합천군이 불허한 가운데 8월 23일 '일해공원'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 상영을 추진하는 데다, '일해공원'이라 명명된 곳에서는 영화를 결코 상영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일해공원 안내판 철거와 붙이기 작업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합천군 역시 "적절한 절차를 거쳐 제정한 공원명칭과 안내간판을 훼손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이런 일이 또 발생할 경우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지에는 이런 소문도 있었다. '합천군은 또 다시 간판이 떨어질 것을 예상한 모양이다. 이번에 간판을 주문하면서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를 미리 제작해놓은 것 같다.' 그러나 기자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한편 첫 번째 일해공원 안내판 훼손은 누구의 행위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두 번째 안내간판 훼손은 주최자가 드러나 있지만 합천군은 법적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측은 '대선을 앞두고 최대한 쟁점화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평가했고, 합천군측은 '저쪽이 정치적 이슈를 만들려는 것'으로 평가했다.

◇ 합천군수와 5공

'생명의 숲 지키기 합천군민 운동본부' 측은 공원 명칭 변경과 관련해 '심의조 합천군수의 5공에 대한 개인적 향수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심 군수가 5공 시절 '화려한 삶'을 살았고 따라서 공원 명칭 변경에 심 군수의 의중이 개입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 근거로 "심 군수가 1998년 군수선거에 출마해 '전두환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지만 낙선했다."고 밝혔다. 심 군수는 지난 해 지방선거에서는 이 공약을 내걸지 않고 당선됐다.

심군수는 5공시절 '세계금융발전위원회 한국대표(1981. 11), 농협중앙회 운영위원(1981∼1983), 새마을지회 합천군 지회장(1984∼1998), 합천농지개량조합장(1986∼1989)을 역임했고, 이후 합천농지개량조합장 민선조합장(1989∼1993), 학교운영위원회 합천군 협의회장 및 경상남도 협의회 감사(1997∼) 등을 역임했다.

시민단체 측은 '일해공원'은 시작일 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일해공원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 기념탑' 건립을 추진하는 등 성역화 작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심의조 군수의 입장을 듣고 싶었다.

합천군청을 찾아갔지만 심의조 군수는 강원도 출장 중이었다. 심 군수와 직접 통화할 수도 없었다. 보좌관은 "일정이 바쁜데다 언론과 인터뷰할 경우 언제나 좋지 않은 이야기만 실린다."고 했다.

보좌관은 "(일해공원 개명과 관련)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다. 기존 이름이 너무 길고, 새 공원 이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밖에서) 들어와서 개명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그는 "순수하게 군민을 위해서 추진한 일을 저쪽(시민단체)에서 정치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좌관은 또 "반대는 일부 의견으로 알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여론에 반하는 일을 추진할 수는 없지 않으냐? 특별한 계기를 통해 군민들의 마음이 변할 경우(일해공원 명칭을 반대할 경우),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군수님도 그런 생각을 피력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보좌관은 현재로는 일해공원 외에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관련해 다른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 없으며 편성된 예산도 없다고 밝혔다.

◇ 일해공원은 어떤 공원

일해(日海)공원은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942-2번지 일원으로, 면적 5만 3천 724㎡(1만 6천 276평)의 인공 숲이다. 소나무를 비롯해 19종이 수목이 있고, 야외무대, 건강지압보도, 바비큐장 등 시설물들이 설치돼 있다.

경상남도의 새천년 밀레니엄 사업으로 68억원(토지매입비 포함)을 들여 2000년 착공, 2004년 6월 준공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인 일해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사용됐던 이름 '새천년 생명의 숲'은 당시 추진했던 공사명으로, 준공 무렵 새 이름 선정계획을 수립했으나 공원준공 일정이 촉박해 명칭 선정을 보류해왔다.

합천군측은 2004년 준공당시 예비 선정된 4개 공원이름(일해, 황강, 죽죽, 군민공원)으로 2006년 12월 군민 우편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우편 설문 결과 일해(55.8%), 황강(32.7%), 죽죽(21%), 군민(9.4%)로 나타났다고 합천군측은 밝히고 있다.

'일해공원'은 흔히 강둑 안쪽의 체육시설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아니다. '일해공원'으로 명명된 곳은 체육시설 쪽을 뺀 강변의 숲 부분만을 지칭한다.

정광효'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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